음식을 빌어 어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정겹고도 애잔하다. <시청 앞 김밥천국 혼밥클럽>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메뉴가 나올 때마다 한 편 한 편의 웰메이드 드라마를 본 것처럼 여운이 길고 어떤 이야기에선 마른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도대체가 이렇게 제각각인 삶이라니.
음식 하나를 주제 삼아 그 너머의 사연들을 반추해본다는 점에서 어쩌면 <심야식당>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청 앞 김밥천국 혼밥클럽>은 <심야식당>처럼 ‘마스터’와 깊이 교감하거나, 누군가 그들의 삶을 관조하는 작품은 아니다.
장소부터가 그렇지 않나. 전국 어디에나 비슷비슷한 체인점이 있고 대개는 비슷비슷한 모양새로 운영되는 식당. 무심한 듯 손님을 받고 주방 이모에게 주문을 넣는 홀 이모가 있는 곳. 빠르게 주문하고 빠르게 나오고(나는 정말 김밥천국의 조리 속도에 늘 감탄한다. 메뉴 통일 같은 것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 먹고 빠르게 계산하고 나서는 곳. 혼밥 같은 거 유행하지 않을 때에도 누구나 혼밥을 하던 곳. 누구나 빠르게 한 끼를 채우고 적당한 만족감으로 나서는 곳이다.
단골들만이 찾아 오는 일식당의 근사함은 없지만, 주방 이모가 메뉴에 없는 것을 절대로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식당의 일상적 존재만큼이나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삶의 모양으로 이곳을 찾아든다. 그리고 그 평범함과 일상성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이 눈물겹게 좋아진 것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지만 밥과 관련된 상처 하나쯤 없는 여자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명절 때 고향에 가면 남자 어른들/여자-아이들이 밥을 따로 먹는 광경을 목격하며 심부름을 하고, 어른들이 밥을 다 먹기 전에 과일도 깎아 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므라이스> 편에서 직장에 복귀한 여성이 평일 아침에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충만한 행복을 느낄 때, 그 작은 여유에 더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나 대충 흘려서 잠이나 깨고 보잔 심산으로 아침을 버티는 나로선 감히 맛볼 수 없던 행복이니까. 그리고 그 작은 포만감이 누군가의 고된 아침을 감당하게 해 줄 테니까.
한편, 이번엔 돈까스다. 김밥천국에는 돈까스만 해도 종류도 많다. 치츠 돈까스, 고구마 돈까스, 심지어 고구마 치즈 돈까스까지… 고기라 치고 든든하게 좀 먹어야겠다 싶으면 시켜먹는 게 돈까스인데, 이때만큼은 호사스럽게 칼질도 할 수 있다. 나도 천원 김밥 한 줄 먹으려 자리 차지하는 게 미안해서 라면까지 같이 시켜먹고 급체한 적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만, <돈까스> 편에서의 청년이 같은 이유로 시켜 먹은 돈까스는 안타깝게도 맛도 별로 없었나보다. 한 끼 메뉴에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알기에 안타까움을 더하지만, 퍼석한 돈까스였더라도 그것은 고된 그의 하루를 책임진 저녁이었을 것이다. ‘인생.. 너무 힘든 것이네’ 하며 절로 한숨이 푹푹 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저마다의 삶을 감당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도, 나에게도 건투를 빌고 싶어진다. 울지 말고 돈까스도 가끔은 먹어가며 잘 해보자고.
<순두부찌개>는 제목부터 너무 간절해지는 이름이었다. 그렇잖아도 각 메뉴마다 그 음식의 맛과 모양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일품인데, 순두부찌개는 정말 그 중에서도 최고였달까. 우리 인생에도 혼자 즐기는 게 제맛인 시그니처 메뉴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흘러간 추억이 어떻고 저떻고간에 말이다.
<시청 앞 김밥천국 혼밥클럽>은 우리네 삶에 극히 평범하게 잘 맞는 소설이다. 근사한 요리가 나오거나, 사연 있어 보이는 마스터와 사연 있는 손님들이 대면해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내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지 않아서 더 짠하고 정겨운 삶의 모양들이 깊이 와닿는 것이다. 일상식에서 파생된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고된 하루를 같이 살아낸 듯한 동질감마저 드니까.
다시 한 번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