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좋게 만드는 약에 의한 인위적인 초인류의 탄생과, ‘자살’이라는 결말로 치닫는 인류 종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신인류의 탄생을 다룬 점에서 그 소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 3인류”나, 혹은 머리가 좋아지는 약을 소재로 한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이 떠오르기는 합니다만, 각 인물들의 갈등을 묘사하며 ‘소설답게‘ 이야기를 풀어가던 그 작품에 비해 homo suicide는 다소 무미건조합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이런 소설을 쓰셨다는 참신함에는 박수를 드리고 싶어요.) 글의 컨셉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잡으신 것이겠지만, ‘보여주기’ 대신 ‘설명하기’가 너무 많아서 공부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 결과, 초반부에서 풍겨오는 감상은, ‘이게 설정집이야, 소설이야?’ 였습니다. 사실, 한스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부분은 다소 세뇌적입니다. 젊은 나이에 학위를 취득하는 등 (한 논문으로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지만) 기타 여러가지 그의 업적을 나열하며 그의 똑똑함과 선구자적 면모를 강조하는데, 그것이 주로 신약 개발에 집중되어 있을 뿐 학계의 대규모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서 ‘잉그리드 F 잭슨’ 씨의 거창한 평가에 비해 다소 아쉬운 업적이긴 합니다.
학자의 저술을 빌리는 형식은, 소설로서는 양날의 검입니다. 디테일한 묘사는 형식상 포기할 수 밖에 없으니 이야기의 진행을 거의 설명에 의지해야 합니다. 대신 그만큼 ‘실제’라고 독자를 착각하게 만드는 만큼 보다 ‘현실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죠. 비록 가상 인물이라고 해도, 저술한 학자의 권위에도 의지할 수도 있으니 설득력도 커지구요. 그런데 이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서술되어 이 이야기가 실제라고 독자들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을 경우의 얘기입니다. 설명하는 표현이나, 혹은 이야기 자체가 현실감이 없다고 독자가 인지하는 순간, 그 위화감에 의해 독자는 강제로 감정이입에서 끌려나옵니다. 제가 아쉬웠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표현의 어색함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보자면, 2화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장비의 비유가 어색했는데요. 화자인 ‘잉그리드 F. 잭슨’ 씨가 글을 쓰는 시점이 삼국지가 전 세계적으로 대 유행을 해서 그 내용을 비유에 활용하는 것이 일상화된 세계관인지는 궁금하지만, 글쎄요. 서양인이 이런 비유를 사용한 부분에서 몰입이 깨진 것이 사실입니다. (반전으로 잭슨 씨가 동양인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뭐 이런 부분은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작품을 감상하면서 제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부분은, 학자의 저술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 치고는 사실성과 전개의 치밀함이 부족한 것이 느껴질 때였습니다.
우선 라크리마가 판매되는 경위가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신약이 판매되려면 최소한 3번에 걸친 임상 실험 결과가 필요하며, 더군다나 약의 효과가 5년 뒤에 나타나는 경우라면 (사실 경구투여된 약이 5년 동안 체내에 남아 효과를 낸다는 점, 단백질 치료제를 경구로 투여한다는 점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어색한 것이 많지만 한스는 천재였으니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칩시다) 임상 실험도 그 이상 긴 시간동안 진행해야 합니다. 센터 연구원 12명이 임상 실험을 했다지만, 신약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은 임상 실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5년 이상 확인이 필요한 약을 길어봤자 3년만 확인했는데, 전 세계 식약처들에서 이런 부실한 자료만 가지고 허가를 내 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스가 ‘사고실험’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사실 분자 단계에서 약물의 구조를 설계해 효능이 좋은 약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있습니다. (사고 실험으로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전부 컴퓨터를 통해 계산합니다. 그 모든 단백질의 시퀸스들을 외워서 사고 실험만으로 신약을 개발했다면 한스는 알파고 이상의 천재겠지요.) 실제로 이를 바탕으로 제약회사 연구소마다 수천개의 후보 물질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 물질들이 개발 과정을 거쳐 시판되기까지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약의 안전성과 독성입니다. 현실에서의 신약 개발이 오래 걸리는 것도 사람이 먹었을 때 문제가 없을지 확인하는 과정을 기준에 맞춰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보물질이 체내에 존재하는 모든 분자들과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사고 실험으로 안전성 확인도 가능하겠지만, 체내에 존재하는 단백질이 어떤 것이 있는지 다 밝혀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밝혀진 것들도 사람마다 단백질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 (혈액형이 A, B, O, AB 형이 있듯이)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본문 중에 영장류 4세대를 얻었다는 내용이 언급되는데요, 2년만에 영장류 4세대를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침팬지만 해도 생식이 가능할 정도로 성숙하려면 대략 10년이 걸립니다. (사실 영장류 4세대의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만)
이렇게 길게 설명을 늘어놓으니 ‘어차피 픽션인데 너무 진지하게 덤벼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님이 택한 형식을 고려하면, 일부 독자에게는 이러한 아쉬운 부분이 몰입에 생각보다 큰 장애물이 된다는 점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의 갈등을 이루는, 합리주의적 사고와 종교적 사고, 그리고 ‘합리적 자살’의 주장 등 다양한 논리의 싸움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공리주의라든가, 여러 실존하는 주장들을 끌어들인 것을 보면 가능한 치밀하게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무래도 어설프게 느껴진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선 종교인들의 교리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일부러 모순 투성이로 만들어 놓고, 한스에게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이상한 세력으로 묘사하는 모습은 오히려 너무 과장되어 있어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종교계의 사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고 그냥 비판하기 좋은 어설픈 상대로서 설정해 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한스가 죽자 종교인들은 사탄의 죽음을 기뻐하는 광신도적 모습을 보입니다. 종교계의 대표자로 씨커와의 토론에 참여한 학자는 기껏해야 중학생 수준의 주장만 늘어놓다가 격파당합니다. 우리 삶에서 접하는 실제 종교인들의 모습을 고려하면 쉬이 납득하기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학자들의 토론 부분도, 대학자들의 논쟁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액션 영화에서 기대했던 호쾌한 액션 대신,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싸우는 초딩 싸움을 보는 기분입니다. 근본적으로,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초인류들이 대체 어떤 논리에 넘어가서 자살을 하는 건지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죽으면 불행도 없으니 자살을 한다? 하지만 죽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일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0을 선택하면 적어도 –는 아니니까 자살하자는 논리에 그 똑똑하다는 초인류들이 전부 설득되는 것이 가능할지… 씨커의 저서 ‘합리적 자살’의 내용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사실, 아무리 모든 초인류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한다고 해도, 각자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개성 없이 똑같은 선택 (예를 들면 자살)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타당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선택의 차이가 그 사람이 합리적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여행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살하기 전에 전 재산으로 여행이나 한 번 다녀올 수도 있겠죠.
씨커가 넘겨준 자료를 읽으며 이야기는 후반으로 치닫습니다.
한스의 죽음을 ‘진화의 끝이 멸종이라는 것을 알고 자살했다’고 주장하는데, 논리 전개가 영 어설픕니다. 과학자가, 특히 한스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실험체 영장류들의 집단 자살을 보고 인류의 미래도 저럴 것이라고 비과학적인 넘겨짚기를 해버릴까요? 그 밖의 다른 설명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사실 한스가 자살한 진짜 이유는 ‘생명을 경시하게 된 인류가 맞이할 종말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어설픈 부분은 사실 복선이었습니다. 씨커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었죠.
그러나 문제는, 이 반전 또한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합리주의가 생명경시풍조로 이어지고, 그 결과 자존감을 잃은 인류가 종 전체적으로 자살한다…. 공리주의든 뭐든, 합리주의적 사고의 결과가 실험 동물이나 수정란의 생존권을 비롯해 다소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신약 개발을 통해 더 많은 생명체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판단은 ‘내 생명이 이 수정란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이기적이지만 분명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전제를 부정하는 이 결론 또한 궤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매스이펙트라는 게임을 아시는지요. 그 게임은 (최근 개발 중인 신작을 제외하면)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 마지막에 해당하는 매스이펙트3의 엔딩이 너무나 설득력이 없고 허무했기에, 탄탄한 스토리의 전작들에 매료된 수많은 팬들은 그 엔딩을 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의 결말에서 저는 그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기대하게 만들며 전개되었지만, 마지막은 허무합니다.
하지만, 특히 20세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열심히 자료를 조사하고 치밀한 논리를 구성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의 사색을 통해 얻어진 깊은 철학이 느껴집니다. 사실, 예리하지 않다고 비판하긴 했지만, 등장인물들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 문제에 대한 저만의 생각을 다듬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순수인류의 신체 단련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보는 등, 완전한 합리성을 갖춘 초인류들이 세상을 보는 색다른 시선들은 작품의 좋은 양념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이 작품 이후, 시간이 흘러 훨씬 무르익었을 작가님의 철학이,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 낼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