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인권이 존중되고 우대받는 발해의 가상역사 여성군주물입니다.
가야국을 흡수하고 신라와 백제를 공격해 한반도 지역을 통일 평정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어질고 유능한 군자라 칭송받는 대수문 태왕의 시대이지요.
이 가상국가 발해의 위용은 실로 높아서 멀게는 로마까지 무역을 넓혔고 성별과 신분에 관계없이
인품과 실력에 비례해 능력이 평가되어 높은 직위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공명정대한 나라예요.
여성이 대대로 왕좌를 이어오고 배우자 남자들을 거느리는 내용이다 보니 신선에게 전수받은 기술
‘두 번째 태’로 임신 기간에서 자유롭고 많은 자식을 가질 수 있으며 양육을 친부들이 맡고 있어서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여성 서사를 가진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를 둘러싼 배우자 태군과 첩들의 이야기, 몰락한 신라의 왕족으로 신분을 감추고 노비로
지내다가 아름다운 용모로 인해 태왕에게 첩으로 보내지는 김부원의 이야기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멋있게 등장했던 태왕 대수문은 편 수를 더 해갈수록 쉽게 흔들리면서 주도적이지 못한
무능한 군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처럼 다정함과 최소한의 관심을 두고
무심하게 여러 가지 위험과 가해에 배우자인 남자들을 노출시키지만 나라는 그럭저럭
다스리는 왕이거든요. 화려하고 멋있게 등장해서 평면적인 캐릭터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왕의 관심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다투라고 가둬진 사람들의 행동은 그냥 애처로워요.
작품에서 성별 위상은 여자 남자로만 바뀌었지 기존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성별–지위–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인품과 실력으로 평가되는 문무를 숭상하는 나라의 남자들이
호쾌한 모습을 갖지 않고 왜 저리 하나같이 모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걸까요?
발해 이외의 국가와 왕국들은 가부장제로 유지되는 것 같지만 상호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고
왕가만이 신선의 출산법으로 아이를 얻고 있다면 국민들은 임신출산과 양육 기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강력한 가모장제를 유지하기엔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신선이 존재하고 그 기술이 운용되고 있다면 좀 더 다양한 교류와 활용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 중에 괄호가 많은데요.
전편에 나온 괄호 설명이 회차마다 중복적으로 계속 나오거나 독자의 상식을 의심하는 괄호 설명,
문맥 속에 설명으로 나타내야 할 명칭을 괄호처리 한 부분이 많아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읽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직접 썼다’는 의도는 정말 좋지만, 힘이 부족해
여자에게 씌우던 코르셋이 남자에게 씌워진, 남녀만 바뀐 군주물 느낌이 강하네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