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는 아주 매력적인 장르기도 하지만 어떤 신선함을 찾기엔 이미 너무나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과 열정이 뒤섞여있는 복마전과 같은 형국이라고 생각됩니다.
표현이 좀 과했습니다만, 그만큼 많은 작가님들이 도전하고 그만큼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요.
제가 브릿G에서 본 작가님들 중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노말시티님의 좀비물은 성격부터가 달랐습니다.
중반부로 갈 때까지도 좀비물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작가님이 걸어놓으신 대로 몰입이 쉽지 않은 서간체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이 되는 어찌보면 답답해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왜이리 눈을 잡아끄는 것인지, 메모리, 스토리지등의 용어를 잘 모르는데도 왜이리 술술 읽히는 것인지..
결국 글은(특히 소설은) 작가의 독자의 대화같은 성격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독자의 관심을 끌고, 관심이 몰입으로 전환되다가 종국엔 글속에 깊이 들어와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소설로서 최고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여러 장애물(단조로운 문체, 몰입이 쉽지않은 보고서의 형식으로 결말까지 진행되는 구성)을 넘어서고 이런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님의 능력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
시기를 알 수 없는 미래에, 인류는 멸종한 것으로 보이고 태양열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안드로이드들이 세상을 주유하게 됩니다.
지구를 뒤덮은 컴퓨터바이러스로 인해 좀비화된 안드로이드들은 전염만을 목적으로 땅을 점령하고, 마지막까지 대항하던 에딘과 그의 휴머노이드가 태양열로 움직이는 좀비들과 싸우며 반격을 계획합니다.
좀비물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전염과 무력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대에 들어 알게모르게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 느릿느릿 걸어오던 썩은 시체에서 현재에 아크로바틱한 무빙을 보이는 전투좀비들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는 그들의 해괴한 움직임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대항하기 힘든 거대한 힘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나름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거기에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무섭게 생긴 괴물도 큰 총을 쏘면 된다는 미국식 총기제일주의가 먹히지 않는 상대인 좀비들을 보면서 저는 나름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좀비는 어떤 모습일까?
다른 소설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작가님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미래의 세상과 그 세상을 덮어버린 좀비는 저에게 좀비물이 줘야할 두 가지를 모두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력감과 전염에 대한 공포죠.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인간의 멸종을 기정사실로 둔 채 내용을 전개합니다.
굉장히 모험적인 전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작가님의 빼어난 능력이 여기서 한번 등장합니다.
절대 확신하지 않고 끝까지 추측하게 만드는 겁니다. 분명 인간은 멸종했다고 인공지능이 이야기하지만, 자꾸 여지를 남겨둡니다.
물론 끝까지 읽으신 분들은 소소한 배신감을 느끼실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이 글의 묘미가 아닐까요?
서간체 형식의 글은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반전의 묘미나 스릴러의 재미를 담기는 힘듭니다.
위험한 일을 나섰던 아스와 페이바가 다음 보고서를 남겼다면 ‘아, 성공했나보네.’라는 기본추측을 깔고 글을 읽게 되겠지요.
그런 부분을 고려한 작가님의 날카로운 글솜씨는 제가 리뷰로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입니다.
네, 그냥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포칼립스물의 특징인 생존에 대한 막막함과 이미 멸망한 세상을 바라보는 절망감을 덤덤하게 읊어주는 인공지능의 보고서로 지켜보는 느낌이 사뭇 새롭습니다.
초반부에는 약간 부족할 수도 있는 긴장감을 작가님은 작전의 실패, 줄어드는 자원같은 아포칼립스물의 재료들을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서 해결해나가셨습니다.
초반부를 넘어서면 그 때부턴 글을 읽어나가는데 어떠한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전개와 독특한 미스테리를 안겨주시는데 그 방법이 또한 기발합니다.
자신의 데이터를 복제한 휴머노이드와 벌이는 설전은 예전 ‘쏘우’나 ‘유주얼서스팩트’를 볼 때와 같은 긴장감과 스릴을 주면서 결말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펼치게 하는 매우 훌륭한 재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기획단계부터 염두에 두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고 또한 진부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풍성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준 멋진 요소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야기의 배경부터 전개, 국면의 전환을 이끄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제가 가장 사랑하는 스타일의 따뜻한 결말까지…
이 이야기는 제게 리본을 힘겹게 풀고나서 등장한 멋진 성탄절선물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물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고 그만큼 멋진 작품도 등장할 것입니다.
공모전 마감을 앞두고 훌륭한 작품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설마 여기서 더 멋진 게 나오겠나 하던 참에 이런 명작을 보게 되니 공모전이 내년까지 계속되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램까지 가지게 되네요.
책으로 소장하고싶은 훌륭한 작품이고, 모르는 사람한테도 추천할 수 있을 만한 멋진 작품입니다.
그런 이유로 부족한 글솜씨를 빌어 추천글을 남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