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Prototype과 원형Archetype을 찾아서. 비평

대상작품: 제2차 시린골 미궁 구출 작전 (작가: 창궁, 작품정보)
리뷰어: 비티, 2시간 전, 조회 7

원형Prototype과 원형Archetype을 찾아서.

 

1. 앞서

원형Prototype은 무언가가 현재의 형태가 되기 전의 형태를 의미한다. 원형Archetype은 여러 형태의 으뜸이 되는 꼴을 뜻한다. 프로토타입과 아키타입은 모두 ‘원형’을 뜻하며, 맥락에 따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프로토타입은 현재에 이르러 대체로 사라진다는 점에서 아키타입과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2. 시린골

창궁 작가에겐 여러 강점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고르자면 무개성일 것이다. 무개성이라하면 약점을 일컬는 것인데 구태여 강점이라 인용을 한 것은 창궁 작가의 문체가 작가주의적 아집을 놀라우리만큼 유효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독성과 친화성이라는 목표를 매 작품마다 다른 문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장르 문법을 불문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성이란 이름으로 작가의 고집과 악습을 순화한다면, 무개성이 강점이 되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시린골은 명명백백 판타지 세계다. 그러면서도 저명한 세계의 언어를 인용하거나 답습하기보단 아예 새로운 세계를 묘사한다. 시린골에 존재하는 개념과 양상은 대체로 시린골에서 처음 발견하는 것이다. 요컨대 설정이 전형적이지 않다는 뜻인데, 대체의 경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때엔 그에 따른 낯선 설명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시린골의 언어는 그렇게 개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미궁학, 미궁의 징크스, 미궁석, 묘사꾼, 감정갈귀… 도통 들어볼 일 없는 언어임에도 충분히 의미를 알 수 있다. 지엽적이지 않은 덕에 늘 그곳에 있었던 것만 같은 친숙함까지 있다. 장광설과 주석도 부재하니, 창궁 작가가 추구하는 가독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득 ‘제1형 미궁’이니, ‘창궁宮석’, ‘샤를 가쉬·물렛’, ‘균계기사 푼기가디언’, ‘마물 이미테이터’ 같은 이름을 상상했는데, 136매의 분량에서 이런 이름을 3번 이상 마주했다면 그때부턴 <제2차 시린골 미궁 구출 작전>이 <제1차 시린골 고유명사 구출 작전>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적절한 정도의 묘사와 설명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환기시켜주니 꽤나 상쾌한 마음으로 시린골을 정독할 수 있다.

 

3. 잠재의식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의 목표는 미궁 설계자(보다 귀한 미궁석)의 구출이다. 때문에 필요한 것을 구출해내고 탈출하는 전형적인 서사가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크게 보자면 맞다. 구출대는 필요한 것을 구출하고 미궁을 탈출한다. 차이점은 중반부터 진의가 구출이 아님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구출이라는 목표를 가진 영수림이 홀로(곰팡이 기사는 인간이 아니니 홀로라고 하자) 사라지자, 샤를과 라카바에게 구출은 그저 탈출을 위한 수단이 된다. 샤를(가명)은 스스로 생각보다는 탈출이 단순할 것이라 선언하고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진정한 구출 작전이 시작된다.

시린골에 존재하는 미궁의 원형Archetype은 흥미롭다. 본래 마궁은 사람들의 잠재의식에서 발하는 미궁이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칼 융이 말한 아키타입이다.

칼 융은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보편적인 인식이 있었을 것이라 믿었다. 인류가 공유하는 아키타입이 전설이나 신화,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칼 융의 아키타입처럼 미궁 설계자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미궁은 설계자 개인의 감정에 감응하였으며, 과거에는 집단 무의식 속에서 미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음침하고 미지의 위협으로 가득 찼으나 희귀하고 진귀한 자원으로 가득 차있으며 칩입자를 막는 함정으로 가득한, 마물이 존재하는 미궁의 원형은 집단 무의식의 표출이었다. 요컨대 미궁이란 것은 결국 시린골의 주민들이 공유하던 미궁의 원형Archetype이 실재하는 마궁으로써 원형의 형태가 강화된 결과물이란 것이다.

욕망에 공통된 도리, 즉 공리가 존재하며 고차원적일수록 공리를 충족할 수 없다는 증언은 인간이 원형Archetype이 되는 공통의 욕망을 공유하나, 욕망이 맥락에 따라 분화할수록 다른 형태를 띄게 된다는 말이 시린골의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실존함을 뜻한다. 정확히는 보편적인 형태면서, 소급할 수 없는 복잡성의 시작인 원형Prototype이다.

미궁 설계자가 모두 미궁 속에서 죽는다는 징크스는 멀리서 바라보면 인간은 욕망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다. 더더욱 과거로 소급하려는 야이샤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시린골 세계의 미궁은 설계자의 실체화된 감정이다. 야이샤는 자신의 욕망이 감정 밖에 있다는 착각을 하였다. 숨겨둔 무의식을 스스로 마주하면서까지 말이다.

 

4. 원형

미궁이 설계자의 감정이란 원리 속에서 자명해지는 것은 샤를의 잠재의식이 작중의 배경이란 사실이다. 라카바는 아예 미궁을 꿈처럼 여기라고 선언한다.

세상에는 원형Prototype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 진화생물학이나 언어학 따위가 그러하다. 학자들은 원형이 우월한 형태가 아니며, 근본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느 시기에 존재한 한 형태였음을 늘 생각하여야한다.

잠재의식을 탐험하는 야이샤는 마궁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궁이 마궁에서 유래하였으며 현재와는 형태와 양상이 다르단 점에서 마궁은 원형Prototype이다. 아마 미궁학도 선술한 두 학문처럼 현재의 현상에 대해 연구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이미 마궁으로부터 미궁이 갈라져나온 전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원형은 미궁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라카바는 감정갈귀라는 마물, 감정을 먹는다는 전설이 생기기 이전, 기억을 먹던 마물에 대해 말한다. 감정갈귀의 원형Prototype이다. 두 사람은 감정의 원형을 찾고, 끝내 미궁의 원형에 도달한다. 끝내 기억의 원형 속에서 서사의 원형이 되는 배경을 찾는다. 샤를이란 이름으로 살던 삶에서 학자로서의 내궁을 발견하듯 말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라카바와 곰기, 영수림의 원형이 되는 존재가 밝혀진다.

마궁이 현재는 미궁이 되었고 라카바는 묘사를 거듭한 끝에 현재 자신이 라카바가 되었단 사실 속에서 마궁과 라카바의 본질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다.

모든 프로토타입에는 수많은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본래 곰팡이었던 곰기는 미궁이 되었고, 무언가를 묘사하는 마물은 라카바가 되었으며, 감정갈귀는 인간처럼 살고 있다. 어떻게보면 마궁학자 야이샤도 미궁 밖에선 샤를이란 이름으로 존재하였다. 과거가 어떠하였던 간에 현재는 이렇게 존재한다. 하지만 야이샤는 홀로 원형에 다가가려한다. 미궁의 원형인 마궁을 추구하고 미궁 속에서 미궁의 본질일 수 있는 미궁석을 찾는다.

허나 프로토타입은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토타입이다. 모든 것이 현재의 상으로 달려가는 와중, 홀로 마궁학자였던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였기에 실패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야이샤는 여러 미궁석이 존재하던 마궁을 복원하려한다. 언어로 따지면 외래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시절의 순수하던 모어로 복고해야하며, 생물학적으로는 모든 조류의 조상인 티라노사우르스가 가장 강력하니 복원해야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를 사는 입장에선 요상한 것은 물론이고 불쾌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희극과 비극의 원형이 어떠하든 긍정하고 크게 웃는 영수림은 야이샤의 안티테제겠다.

 

5. 나가기

현실이 그러하듯, 누군가는 본질에 다가가려하는 반면, 누군가는 그저 존재하는 것을 따르는데에서 시린골은 잠재의식을 무척 잘 세계화하고 있다. 꿈에서는 상징이 아키타입을 대변하는데, 다시 생각하면 풀벌레가 울기엔 너무 늦은 새벽이란 말조차 무언가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석하고 해체해야할 텍스트는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린골을 시린골로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서사가 짜임새 있으면서 무척 깔끔하게 닫혀있는 덕이다. 모든 것은 일관성이 있고, 일관적이지 않은 건 예측가능한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결말을 보고서야 예측가능하였단 사실을 깨달으니 작품의 뱃심이 무척 탄탄하다. 이것은 창궁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관처럼 보인다.

구태여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반전미가 부족하다느니, 결말이 상상의 여지를 제거한다는 등의 평을 늘어놀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세계가 작품을 위해 옹골지게 다듬어진 물건이란 뜻이다. 작가가 가독성을 추구하면서도 무게감이 상당한 덕에 쉽사리 잊혀지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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