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전달하는 실화의 뒷모습 의뢰(비평)

대상작품: 공기청정기의 술집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3시간 전, 조회 13

1. 도입부

이 소설은 평범한 업무 전화로 시작한다. 숫자가 스릴러의 도화선이 된다. 426만 원. 아직 범죄는 없고, 냄새도 없고, 시체도 없다. 그러나 이 숫자가 이후 모든 것을 끌어당기게 된다. 미수금이 상민을 그 방으로 이끌었고, 그 방의 공기청정기가 진실을 감추고 있었으며, 그 진실이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코와 위장과 명식의 가면을 뒤집어버렸다. 독자는 첫 줄부터 이미 사건 속에 던져져 있다.

 

2. 특색

이 소설은 일상 밀착형 스릴러의 계보에 놓이면서도, 실화 기반이라는 점에서 팩션 문학과 접점을 갖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범죄의 전말을 추적하거나 재구성하는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사건의 외부에 있던 한 인물의 감각과 기억을 따라가며, ‘몰랐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기록한다. 특히 실화에서 주인의 지인이 남긴 말, “쾌활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라는 것. 소설은 바로 이 마지막 문장, 즉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해체하기 위해 쓰였다.

 

3. 캐릭터와 스토리상의 특징

중요한 질문 같았지만. 내 심장소리가 머리까지 울려서 계산기를 고장 냈다. 그 날의 모든 이상함이 스쳐갔지만 결과값은 NO였다.

서술자 상민은 철저히 실용적인 인간이다. 감정보다 계산이 앞서고, 심지어 형사 앞에서도 “사실도 흘려야겠다고 계산했다”고 내면을 드러낸다. 이 냉정한 서술자가 마지막에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구역질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강력하다. 계산기가 고장났을 때, 인간의 몸이 대신 반응한다.

명식은 실화 속 지인들의 증언을 그대로 소설 안에 내면화한 인물이다. “쾌활하고 좋은 사람”,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은 소설 속에서 명식이 7년간 상민에게 쌓아온 이미지와 정확히 겹친다.

소설은 그의 내면을 단 한 번도 직접 열어 보이지 않는다. 독자는 상민의 시선을 통해서만 명식을 본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와는 달리, 서서 잠든 채 발견되고, 말이 없고, 눈 밑이 늘어 있는 남자. 그리고 공기청정기 코드가 뽑히는 순간, 표정이 지워지는 남자. 소설은 실화 속 지인들이 “전혀 몰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인물로 구현해낸다.

스토리 구조의 핵심은 역행적 공포다. 사건은 이미 벌어져 있고, 주인공은 그 사건의 한복판을 지나가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공기청정기 코드를 뽑은 순간, 상민은 자신도 모르게 범죄 현장의 밀봉을 해제한다. 실화 속 손님들이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 뭔가 이상했다’고 뒤늦게 깨달았듯, 소설의 상민도 모든 것이 드러난 후에야 그날 밤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 아이러니가 소설의 핵심 서사 장치이며, 동시에 실화가 가진 가장 섬뜩한 진실의 재현이다.

 

4. 소설의 메시지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붕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위 ‘등잔밑이 어두운 격’이다.

상민과 명식은 7년의 거래와 우정을 쌓았다. 상민은 명식의 여자친구도 알고, 강원도로 여행간 것도 알고, 술 취향도 안다. 그러나 그 ‘앎’이 오히려 눈을 가린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읽지 못했다. 서서 잠든 명식을, 말이 없어진 명식을, 텅 빈 눈의 명식을. 상민은 전부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이것은 실화 속 “쾌활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는 지인의 말과 동일한 구조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다른 면’을 볼 능력을 잃는다.

이 소설의 제목은 <공기청정기의 술집>이다. 그것은 공기청정기가 이 소설에서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일상과 범죄 사이의 유일한 선이기 때문이다. 실화와 소설에서 주인은 냄새를 가리기 위해 공기청정기를 튼다. 기계는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 존재 자체로 이상함을 발산한다. 술집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가장 사교적인 공간이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기계 소리와 향긋한 술 냄새에 가려진 채 며칠을 버텼다. 이 역설이 제목 안에 압축되어 있다.

 

5. 아쉬운 부분

작가님이 리뷰 의뢰하시면서 ‘신문 기사를 금요일 퇴근 전에 보고 구상 후 주말동안 만든 글 입니다. 너무 급하게 쓴건지 제 취향대로 쓰니 이렇게 끝나버리더라고요 고견부탁드립니다’라고 하셔서, 아쉬운 부분, 고치면 좋은 부분들 위주로 쓰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더욱 아쉬운 것은, 명식의 내면이 완전히 공백 처리된다는 점이다. 실화기사 속에서도 범행 동기와 심리는 끝내 외부에서 완전히 해명되지 않는다. 소설이 그 불가해함을 그대로 가져온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즉, 실화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소설가는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는 명식이 왜 그 여인을 그곳에 두었는지, 어떤 감정의 경로로 그 선택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받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단 한 줄의 암시도 없다는 것이 공백으로 남는다.

이 공백은 소설이 택한 관찰자 서술 방식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상민은 철저히 외부의 눈이다. 그는 명식의 무너진 모습을 보고, 냄새를 맡고, 격투를 벌이고, 뒤늦게 진실을 듣는다. 이 구조 덕분에 독자는 상민과 함께 천천히 사건의 실체가 주는 공포에 다가가는 경험을 하지만, 동시에 사건의 핵심 — 피해자 여성 윤지혜와 명식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 은 끝내 소설 바깥에 머문다. 범행의 원인과 감정적 맥락이 서술 구조 안으로 진입할 통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관찰자 시점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민이라는 서술자를 유지하면서도, 사건의 원인을 슬쩍 끼워 넣을 방법은 있다. 예컨대 그날 밤 바 안에서 상민이 흘려들은 대화 한 조각, 명식이 혼자 바라보던 방향, 형수님의 안부를 묻는 상민의 질문에 명식이 보인 미묘한 반응ㅡ표정이나 얼버무리는 말ㅡ하나. 혹은 형사가 윤지혜를 언급하는 방식에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나 파국의 냄새를 독자가 눈치챌 수 있는 한 문장. 이런 장치들은 관찰자의 시선을 깨지 않으면서도, 사건의 원인을 소설 안에서 희미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처음 등장하는 명식의 모습 — 와이셔츠에 정장 조끼, 안목 있는 손님을 알아보는 눈, 능숙하게 코르크를 제거하는 손 — 과 그날 밤 서서 잠든 채 발견되는 명식의 모습은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그 대조가 지금은 오직 갑자기 건너 뛴 ‘시간의 흐름’과 ‘무너진 표정’만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갑자기 7년 뒤로 건너뛰기보다는, 그 사이에 상민이 명식과 어떻게 친해졌으며, 어떤 대화가 오갔고, 피해자는 어떻게 알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 명식이 어떤 식으로 변해갔는지를 대화나 분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보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는지도 납득 가능하고, 방 안에서 기다리면서 문틈으로 보여지는 장면이나 들리는 대화/또는 연출에 따라서는 통화장면 등을 넣어서 피해자 여성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파열의 흔적이 한 겹 더 얹혔다면, 명식의 붕괴는 훨씬 입체적인 무게를 가졌을 것이다. 관찰자의 눈은 유지하되, 그 눈이 포착하는 장면의 밀도를 높이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다음 퇴고에서 가장 먼저 시도해볼 만한 방향이다.

 

이와 연결되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틀 뒤’ 경찰이 현장을 감식 중이라는 장면이 너무 돌연하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날 밤 상민이 떠난 후, 경찰이 출동하기까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명식이 체포된 것인지, 신고가 들어온 것인지, 누가 먼저 냄새를 맡았는지. 독자는 “이틀 뒤”라는 시간 표지 하나만을 손에 쥔 채 갑자기 폴리스 라인 앞에 서게 된다. 그날 밤의 긴장감이 이틀의 공백 속에서 맥없이 소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자체가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 순전히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여러가지 납득가능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공백을 메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틀 사이의 상민에게 균열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상민이 그날 밤의 냄새를 떨치지 못하고 뒤척이는 장면, 혹은 명식에게 연락을 시도하지만 전화가 닿지 않는다는 짧은 묘사 하나. 이것만으로도 이틀의 공백이 단순한 시간 생략이 아니라, 불안이 서서히 쌓이는 시간으로 바뀐다. 그 불안을 품은 채 들어섰을 때 폴리스 라인을 마주하는 것과, 아무 예감 없이 사과 선물을 들고 가다 폴리스 라인을 마주하는 것은 독자가 받는 충격의 질이 다르다.

둘째는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경위를 형사의 입을 통해 한 줄이라도 흘리는 것이다. “어제 밤 신고가 들어왔어요”라든가, “이웃 가게에서 냄새 민원이 있었거든요” 같은 한 문장. 이 한 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경찰의 등장이 갑작스러운 장치가 아니라, 소설이 처음부터 쌓아온 ‘냄새’라는 주제의 논리적 귀결로 읽히기 때문이다. 공기청정기가 끝내 걸러내지 못한 냄새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 누군가의 코에 닿았다 — 이 흐름이 완성될 때, 소설의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된다.

또한 상민과 명식의 격투 장면이 전환점으로서 충분한 무게를 받지 못한다. 주먹이 날아오고 상민이 명식을 바닥에 눕히는 장면은 속도감이 있지만, 그 순간이 사건 전체 안에서 갖는 의미가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다. 만약 격투장면을 통해 방안 벽 어딘가에 금이 갔고, 그로 인해 다른 손님이나 제3자가 신고를 했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었다면 훨씬 복선이나 개연성이 충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형사와의 대면 장면에서 상민의 심리가 더 촘촘하게 묘사되었다면, 실화가 갖는 ‘아는 사람들의 침묵과 증언’이라는 주제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을 것이다.

 

하나 더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현재 결말은 두 개의 클라이맥스가 연달아 온다는 것이 핵심 문제다. 형사에게 진실을 듣는 순간, 길바닥에서 구역질하는 장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다. 굳이 집으로 돌아가는 동선, 화장실, 생리식염수까지 나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즉, “축축해진 채 널브러진 쇼핑백사이로 나온 듯한 과일향기가 엊그제 그 ‘향기’와 섞인다.” 에서 끝냈어도 되었다.

아니면, 생리식염수 장면 자체는 정말 독특하고 강렬하다. 이것을 살리고 싶다면, 반대로 길바닥 구역질 장면을 축소해야 한다. 현재는 길바닥에서 이미 “우웨에에액”으로 감정이 터져버린다. 이것을 미수에 그치게 하거나 — 사람이 많은 곳이고 경찰도 있으니 구역질이 올라오다 참는 것으로 — 집에서의 붕괴를 최초이자 유일한 폭발로 묘사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부분의 문장들이 버리기엔 아깝다.

 

6. 그럼에도 잘된 부분

이 소설은 후각의 구현 방식이 특히 탁월하다.

꼬릿하고,

시큼하고,

텁텁했다.

세 단어를 각각 행으로 나누어 떨어뜨림으로써, 냄새가 천천히 층위별로 밀려오는 감각을 텍스트 구조 자체로 재현해낸다. 그리고 그 냄새를 상민이 “회사 사무실. 여름.”의 썩어가는 쥐의 시체에 대한 기억과 연결시키는 방식은, 공포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독자 자신의 경험과 기억 속 공포와 접촉시키는 세련된 기법이다. 실화 속 손님들의 증언이 후각이 아닌 시각에 머물렀다면, 이 소설은 그 증언들이 미처 닿지 못한 감각의 영역을 열어낸다.

 

마지막 장면의 묘사, 즉 생리식염수를 코에 붓고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결말은 스릴러 장르가 주는 공포와 트라우마의 가장 훌륭한 원칙을 따른다. 공포는 외부 사건이 끝난 후에도 몸 안에 남는다. 위는 비어도,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실화는 검거와 수사로 끝났지만, 그 사건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날의 감각이 어떻게 남았을지를 소설은 이 한 줄로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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