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기록 감상

대상작품: 악의 연대 (작가: 살로메, 작품정보)
리뷰어: 미주, 19년 8월, 조회 31

먼저, 읽는 동안 서늘한 천이 가득 걸린 공간을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어디에나 있는 광목이 어떤 것보다도 싯누렇고 축축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박제한 곳. 그리고 광활한 천의 미로를 걷는 내내 이미 그 속을 헤매고 있던 주인공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호흡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카메라가 된 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요.

기본적으로 매끄럽고 흡입력 높은 문장인데다 앞서 적었듯 인물을 지척에서 보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감정의 흐름을 자근자근 곱씹어 삼키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세 삼키고 흘려보내기보단 오래 담고 싶다는 느낌도 있어요. 여러 번 읽어내린 뒤 창을 닫았다가도 잠시만, 잠깐만, 하는 마음으로 다시 글을 클릭하게 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 팔뚝께가 눅눅해지는 기분과 함께 툭, 장면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요.

그 장면들이 동화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악의 연대>에는 이 글만의 낭만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착 달라붙은 낭만이 너도 한번쯤 그러한 연대를 생각해보지 않았느냔 물음을 무덤덤한 투로 던지면, 이상하게도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연대의 기록을 잠시 읽었을 뿐인데, 영원히 발치의 그림자 속에서 따라다닐 주술에 잠겼다 나온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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