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가님의 글로 인해 브릿G가 후끈 달아올랐었습니다.
그걸 의도하셨다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 짧은 소견으로는 ‘퀴어’라는 주제가 그 자체만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본격퀴어소설은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퀴어라는 장르가 보편적인 비평가들의 시선을 벗어나는 선상에 서 있지는 않다고 보고있습니다.(재미있게도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명이 ‘아름다움의 선’이네요)
제가 이 작가님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기에 담은 ‘이라는 작품을 보고나서부터입니다.
한번 보신 분들에게도 재독을 추천드릴 정도로 좋은 작품입니다. 제가 항상 생각하는 ‘진정한 좋은 퀴어는 퀴어라는 느낌이 들지않는 작품이다’라는 저의 개똥철학에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표현이 되었든 어떤 결말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작중 ‘내’가 가지는 복잡한 심정은 작가님의 생각과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작풍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어린 나의 어설픈 커밍아웃을 대하는 어른들의 거칠고 무관심한 반응에서 결국 현재의 성소수자분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음을, 그리고 우리가 고개를 돌린다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지만 분명한 글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퀴어문학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책도 구입했는데(사실 자랑입니다.) 아직도 퀴어문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이해의 정도를 생각하기보단 작품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하얀 마스크’에서 작중 ‘나’는 아버지의 커밍아웃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은 평범한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아버지는 뒤늦게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게이의 ‘현실’입니다.
평범하게 살고싶은 ‘나’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분명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바위덩어리같은 무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내 아버지입니다.
사업에 망해서 수억의 빚을 진 아버지와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은서의 아버지입니다.) 오랜 흉년에 딸을 잡아먹은 아버지(어떤 무협소설에 등장한 아버지입니다.)에 비하면 굉장히 준수한 아버지이고, 무엇보다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를 숨겨온 가련한 남자입니다.
조심스럽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남자의 모습은 그것이 어떤 성향으로 나타나던 간에 언젠가는 표출되어야 할 사회적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작가님은 최근 여러 작품에서 폭력적이고 방향성을 잃은 듯한 복수심을 드러내셔서 지적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브릿G에는 훌륭한 리뷰어분들이 있고, 그 분들의 좋은 글을 통해 작가님이 얻은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색깔을 지켜나가면서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 ‘하얀 마스크’는 작가님이 걸어가실 방향중 한 곳을 보여주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추천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님께서 퀴어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의 글이 제게는 힐링이 되는 작은 소품상자같은 소소한 일상의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의 사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이분의 글은 제게 그저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가족들에게 말 못하는 서운함과 분노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자물쇠 채워진 일기장 같았습니다.
한 리뷰어께서 최근 퀴어문학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너무나 훌륭한 리뷰라 수십번 읽었답니다.) 저 또한 혐오와 편가르기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하지만 현재의 그 배려와 이해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바닥에서 겨우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방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찌푸린 눈쌀에 대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만큼 했다고, 이 정도면 됐다고 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확답을 할 수 없겠지요.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이제 퀴어문학은 그 자체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이제 작가님께서는 여러 리뷰어분들께서 지적해주신 대로 납득이 갈 만한 퀴어문학으로, 작가님이 지금까지 보여주신 사람, 사랑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지하철에서 아무 생각없이 글을 읽던 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던 그런 글도 많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하얀 마스크”는 제게 그런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