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정체불명의 검고 둥근 과일을 얼결에 사게 된, 아니 사과를 샀는데 덤으로 수상한 과일 하나를 얹어 받게 된 어떤 남자가 있다.
별 기대 없이 먹었다가 그 맛이 뇌리에 콱 박혀 이름도 모르는 과실의 씨를 심어 싹을 틔워낸 한 남자가 있다. 그러다 자라난 식물과 사랑에 빠졌다.
아니면 집착인가.
이런, 세상에나.
맛이나 보시게.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눈을 뜨이게 해 주지.
맘에 들면 씨앗을 싹 틔워보는 것도 좋고. -글 중에서
살아 있는 식물은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 란 제목의 이 단편은 지극히 건조하고 공문서스러운 제목과 달리 수상한 과일을 먹고 남은 씨앗을 심어 키우게 된 한 남자의 사연을 서늘하고 끈적끈적하게 들려준다.
정체 모를 과실 속 씨앗에서 기원한 식물이 가지와 잎을 뻗어 주인공의 몸을 휘감고 피부 위를 넘실넘실 기어 다니며 생명을 빨아먹는 듯한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감각에 대한 묘사는 너무 생생한 나머지 평소 식물에 깊은 호감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두려움을 느끼고 말았다. 더불어 까닭 없이 피부가 근질근질해 저도 모르게 팔을 쓸어 내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이 수상쩍은 식물은 뜻하지 않게 주인공의 삶을 좌지우지 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것은 영원하지 않다.
먹어 치우면 사라질 찰나의 달콤함일 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기억을 먹어 치우고 곱씹을 뿐이다. -글 중에서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무언가에 강렬하게 꽂히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그건 때로 순간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가끔은 끝간 데 없이 이어져 종국엔 평범한 삶을 잃고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나머지 생을 지탱할 빛을 획득하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지만.
꽂히는 그 순간. 분명 그것은 좋은 거였으리라. 하지만 좋음의 대부분은 거의 찰나일 뿐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래, 그거 좋았지.’ 하며 기억을 꺼내 곱씹고 나면 이내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남은 건 기억하는 이 순간이다. 바로 지금 뿐이다.
그나저나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검고 둥근, 노란 과육을 품은 과일의 정체. 주인공을 홀린 마성(?)의 맛을 가진 그 이름.
과일은 좋은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은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