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이 나무와 사랑에 빠지다. 그 부적합이 주는 긴장감 감상

대상작품: 살아 있는 식물은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 (작가: 렌시, 작품정보)
리뷰어: VVY, 3시간 전, 조회 5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의욕도 의지도 잃어버리고 흘러가는대로 살던 주인공이, 이유없이 어떤 대상에게 빠져들고 집착하게 되는 대조가 훌륭한 긴장감을 줍니다. 아니, 빠져든 이유라면 있네요. 바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천상의 맛을 지닌 나무열매의 과육입니다. 그 점이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인물의 동기를 설명하고, 미스테리도 각인시키므로 초반부터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었습니다.

중반에 원영과의 관계가 서술되면서 점차 이야기가 하나의 비유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원영과 입맞춤까지 나눈 사이지만 이제와 애써 관계 형성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일이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지레 두려워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는 거죠. 머뭇거리기 위하여 의지를 잃어버렸다는 투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그때의 입맞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과일의 다시없는 환상의 맛이 대구를 이룹니다.

주인공은 원영은 떠나보냈지만 나무열매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그 맛을 보기 위해 씨를 틔우고 13번이나 분갈이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종내엔 그의 관심을 먹고 쑥쑥 크는 나무에 사랑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자기 이름을 따서 붙인 순이라는 나무를 사랑하게 된 남자. 현실과의 괴리와 긴장감은 점점 심해집니다.

그때 완전히 떠난 줄 알았던 원영에게 연락이 옵니다. 한국에 돌아오라고.

주인공은 나무를 데려가기 위해 검역 절차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은 단편이니까 주인공과 나무 이야기가 중심이었지만, 원영과의 관계도를 보강하여 나무는 노골적인 비유로 기능하고 주로 두 사람의 연애사로 인간관계를 고찰하는.. 그런 깊이감 있는 장편으로 풀어내는 방식도 한번 생각해봄직 하였습니다.

이래저래 영감이 되는 글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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