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 이야기]는 커스텀 베이비, 유전자 조작, 생명 상품화라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SF 판타지이자, 대리모였던 한 여성의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이야기다.
이야기 속 커스텀 베이비들은 더 이상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생명’이 아니다. 그들은 상품성을 지닌 부모의 욕망의 결과물이자, 때로는 대체 가능한 소비품이다. 광고 팸플릿, 아기 디자인 서비스, ‘계약 임신 중단 회수 시스템’ 등은 작가의 상상을 넘어, 실제로 구현될지도 모를 미래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선은 그 시스템 안에서 ‘몸을 빌려준’ 대리모로 살았고, 알비노 유전자를 지닌 채아가 부모에게 선택받지 못하자 끝내 그녀를 직접 키운다. 채아 역시 사회로부터 ‘디자인 실패작’으로 낙인찍힌다. 그녀는 알비노라는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과 차별을 온몸으로 감내하다, 결국 커스텀 베이비 시스템에 저항하며 지명수배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선은 그런 채아를 변함없이 사랑한다. 채아의 부재는 다선에게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불러도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깊은 상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선은 다시 한번 ‘새’를 품는다. 그 새를 돌보며, 채아를 키우던 시간을 떠올리고 ‘엄마였던 시절의 마음’을 되찾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과거 자신이 대리모로 낳았던 또 다른 아이, 명주가 등장한다. 명주는 유산을 노리고 생활지원사로 접근해, 자신이 다선의 딸임을 입증할 계약서를 훔쳐 친권을 주장하려 한다. 그러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다선을 죽이려 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서사적 비극이 아니다. 자신을 낳은 존재를 이익의 대상으로 삼고, 삶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이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벌어지는, 현대 가족 구조의 어두운 그림자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다선 곁에 있던 새 ‘홍’은 명주의 눈을 쪼고, 죽어가는 다선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이 장면은 모성의 환생이며, 다선이 그토록 절실히 바랐던 열망의 귀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부, 어린 채아와 다선이 나눈 대화는 이야기 전체의 수미상관 구조를 이룬다.
“엄마는 똥이 되면 누구한테 먹히고 싶어?”
“새에게. 새는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까.”
“그럼 넌?”
“나는 나무. 엄마가 날아다니다가 나한테 와서 코 잘 테니까.”
이 대화는 결말부, 다선이 새가 되어 메이(채아) 곁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 장면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 삶의 끝에서 찾아오는 모성의 마지막 비상이다.
『네 엄마 이야기』는 채아만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우리 모두의 엄마 이야기다.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작품은 또 다른 주제를 조용히 던져주었고 그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모성애가 내핵이라면, 그를 둘러싼 외핵은 상품과 기술, 계약과 욕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외핵은 디자인 출산, 유전자 편집, 커스텀베이비라는 다른 이름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그 끝에는 인공자궁이라는 차갑고 정교한 메커니즘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 개념은 아직 완전한 현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인공부화, 유전자 조작, 생명 계획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그 문턱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성으로 그 흐름을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네 엄마 이야기』는 다선의 회상과 죽음을 통해 모성애를 재정의한다. 그것은 단지 생명을 잉태한 행위가 아니다. 생명을 품는 순간부터, 고통을 감내하고, 관계의 시간 속에 기억을 쌓고,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감당하며, 사랑을 심어주는 경이로운 힘이다.
이 소설은 그리고 나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기억하는 ‘엄마’는 누구인가?”
바로 이 질문이,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자 모성애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라고 생각하며 이 소설의 리뷰를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