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교회에 다닌 이유가 간식과 용돈이었던 제게는 일종의 사랑처럼 느껴집니다. 이유는 나중에 붙고, 일단 풍덩 빠지고 마는 거죠. 그나마 실존하는 건 형체라도 있고 같이 지낼 수라도 있지, 무형의 개념과 같은 신을 믿는 건 귀신을 보지 않고서 무당을 믿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못 할 게 뭐 있겠어요? 사람의 뇌는 가상의 존재와 실제의 존재도 구분하지 못하고, 아이돌을 응원하든 신을 섬기든 똑같은 부위가 활성화되는 걸요.
그래서일까요, 대기권을 지나도 타지 않은 로켓 조각이 떨어지는 데도 또 이런 일이다, 운이 없었다, 심드렁하기만 한 혁호가 남 같지 않았습니다. 재난 안내 문자가 와도 정시 퇴근하는 걸 보면서는 더더욱 가깝게 느껴졌죠. 다들 홍수든 폭설이든 대중교통 파업이든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시에 출근해야 했던 적이 있지 않나요? 자기 삶을 바꾸지 못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작품을 읽기 전에 장르와 태그, 소개를 먼저 봐서 잘생긴 외계인이 영화로 치면 가장 긴박한 순간에 등장해 멋지게 위기를 막았을 때 바로 알았습니다. 이 외계인은 절대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자 찾아온 게 아니라고요. 물론 절대적인 선의도 어떤 면에서는 무섭고도 남지만, 모두가 대피한 마을을 구한 뒤 떠나지 않고 남았을 뿐인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 멋진 외계인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오래도록 신과 화신과 반신을 좋아한 인류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순 없겠죠. 이해할 수 없는 걸 섬기는 종교가 생기는 것도 역사 깊은 행동이고요.
그렇지만 포교 과정이 마치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 같은 건 의외였습니다. 찌릿, 하고 악수로 시작하다니 풋풋할 정돈데, 첫 종교, 첫 깨달음이면 그럴 만도 하겠죠. 팬클럽 활동을 처음하는 팬이 얼마나 즐겁겠어요? 그리고 이런 깨달은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깨닫지 못한 외부인을 업신여기는 거야 놀랍지도 않죠. 이런 지고의 기쁨을 모른 채 살아가다니, 가엾을 만도요.
구원 받고, 구원하라. 서로를 구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뜻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종족을 제물로 연명하거나 문명을 유지하는 줄 알았더니 껍질로 삼은 게 두 번째 놀라움이었습니다. 잘 해 봐야 식량이나 연료인 줄 알았는데요! 알 주머니가 아니라 사회에 침투하는 방법을 쓸 줄은, 그런 대단한 기술이 있는 곳이 훨씬 더 살기 편하리라 생각해서 예상하지 못해 즐거웠습니다.
이곳의 인류는 언젠가 모두 새로 태어나겠죠. 모두 한 아버지를 둔 자식이니 지구는 거대한 집이 될까요? 그렇게 모두 다른 종족이 된 후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근거리는 마무리였습니다.
음, 이 울림도 좋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