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라고 왜 말을 못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9년 8월, 조회 65

※ 스포 있습니다.

 

작품에서 중요한 장소이자 단어로 나오는 에일-르. 영어 철자로 HEYL-R. 특이한 이름이다. 무슨 뜻일까? 사실 읽으신 분들 포함 리뷰를 쓰시는 분들도 다들 아시면서 볼드모트에게 표하는 경의처럼 부러 침묵하고 계시는 것이리라… 또한 이 이름 역시 전혀 중요하지 않음 또한 파악하셨으리라 믿는다.

이 작품은 파스타나 국수에서 가장 중요한 식재료인 국수=면빨이 주요 소재다. 먹물도 물론 이런저런 장치로 요긴하게 다뤄진다. 누가 그랬던가? 성행위와 식사는 비슷한 욕망 내지는 행위라고. 별로 공감 가지는 않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클리셰임은 인정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호러물의 특성을 살려 이 식사와 성행위의 유사점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먹으면 배가 부르고 성행위 결과 몸 안에 새 생명이 들어서는 현상의 유사함까지 알뜰살뜰 잘 이용한다는 점에서도 참 교묘하지 싶다. 그러고 보니 영화 에일리언이 임신의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이라던가.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에서 이 부분은 더 강화된다.

면빨이 주 소재인 것은 알겠는데 왜 굳이 오징어 먹물을 초반에 그리 강요하는지가 궁금했었다. 주인공이 아내를 하필 두족류에 비유하는 것도. 물론 나중에 가서야 다 복선임을 알게 되었지만. 꼴뚜기 건 문어 건 두족류를 잘 먹는 우리네 문화권에서조차 소형 상어를 마치 곰치가 열대어 낚아채듯 그 야들야들해 보이는 다리로 순식간에 잡아 소굴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 영상을 보노라면 소름이 끼치긴 한다. 또 머리는 어찌나 영리한지 나사형 병뚜껑을 혼자 연구해 열 수 있는 어류라니! 여덟 개의 다리가 그냥 다리가 아니라 뉴런이 포함된 근육이라니!-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냐?!- 과학이 진실을 밝혀낼수록 맛있어 보이긴커녕 정말 외계인처럼 보이는 게 바로 문어 님들 되시겠다.

문어들이 심해에 거의 없다는 피슬리의 설명은 사실 틀렸다. 심해에도 덤보 문어라던가 흡혈박쥐문어라던가 제법 종류가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밝혀질 것이다. 동시에 피슬리의 설명은 진실이기도 하다. 그가 말한 심해는 단순히 바다의 심해를 뜻한 게 아니었으니까.

피슬리가 문어와 먹물에 관해 설명할 때 실내에 걸어둔 나무 간판에 새겨진 ‘HEYL-R’라는 철자가 다시 보이긴 했다. 어딘가 참으로 친숙하고 익숙한 스펠링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바다, 문어와 관련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후의 내용은 예상보다 더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최근 정주행한 ‘기묘한 이야기 시즌 3’의 제작진이 이 글을 참고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이 담긴 수조에 있던 그것이 난로의 장작불 밑에 숨어있었다는 결말도 의외이긴 했으나 잘 찾아보고는 작가의 고증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바다에 가라앉은 그것은 사실 23번째 성운에 속한 불의 행성에서 태어났다나?

사실 맨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문어와 ‘R’lyeh’는 정말 중요한 것을 가리는 그럴듯한 포장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문어의 일부를 주재료로 삼아야 한다면 굳이 면빨이라는 이질적인 부분을 따로 분리해 접시에 담는 번거로운 설정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어와 강한 연결이 필요하다면 먹물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음식으로 응용하기에도 좋고. 결국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면-스파게티’이다. 요리와 식사가 주 소재인 이 소설에서 환상적인 맛을 제공해준 것도. 그 맛으로 사람을 사로잡은 것도 바로 스파게티였으니 말이다.

문어처럼 생긴 그것의 시작 역시 스파게티였다는 독백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주지 않는가? 원흉으로 등장하는 문어보다도 정작 스파게티에 의해 천사를 영접하고 운명을 계시받은 인간이 나오는 장면을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

이 글이 르뤼에의 이름을 빌려 그레이트 올드 원과 아우터 갓의 실체가 사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진실을 밝히고 있음이 이제 명확히 보이지 않는가. -뭐, 엘더 갓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참으로 심해처럼 깊고도 깊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카발라에서 말하는 아인소프 아우르-우주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진정한 무를 오른쪽에. 우주의 끝없는 암흑을 캐러멜 혼합액으로, 별들을 탄산 기포로 은유하는 콜라를 왼쪽에 두신 치킨 님의 전지전능함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된다는 진실 또한 필자는 알고 있다. 빅뱅을 뜻하는 끓는 기름에 진리가 있음을 믿나이다, 치-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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