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때 집앞 목욕탕에 갈때면 늘 때밀이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세신사라고 정식 명칭이 있긴 하던데,
저희때에는 그냥 친근한 때밀이 아저씨였죠, 늘 목욕탕을 갈때면 귀엽다고 요구르트도 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참동안 벌거벗은 체 아저씨의 무용담에 귀를 기울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앉아듣던 소파의 한쪽에는 늘 세로
쓰기로 된 한질(7권)짜리 무협지가 놓여있었죠, 한자가 수시로 등장하는 그 무협지를 펼쳐보면 이 때밀이 아저씨는 강
호에 숨은 기인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늘 아저씨는 뜨거운 욕탕에서 5분 이상 몸을 담구고 있으
면 주화입마를 입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수시로 나와서 찬물을 끼얹지 않으면 온몸에 기가 빠져나가고 혈이 막혀 기공
운신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기억도 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저씨는 강호무림의 숨은 절대강
자임을 의심하지 않았죠, 물론 제가 제대로 무협지를 읽기 전까진 말입니다..
한때는 정말 무협지를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늘 비슷한 테마와 설정과 구성과 내용임에도 어떻게 그렇게 복수와 은
원으로 점철된 강호의 비정한 무림고수의 상황에 매번 흠뻑 빠져드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늘 그렇게 재미가 있었던 기
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김용작가의 영웅문을 시작으로 속고 속이는 강호무림의 이야기에 한동안 흠뻑 빠져 대여점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던 기억도 나구요, 그런 기억속에 묻어둔 무협의 세상이 다시금 빛을 발하는 작품을 보니 좋네요,
“야운하시곡”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밤하늘 구름 아래 늑대의 울음소리가 강호무림을 적시는 듯한 이 작품의 이야기는
강호무림 절대고수인 사혈공이라는 한 무자비한 인물의 이야기입죠, 사혈공이라는 죽은 피가 흐른다는 냉혈한 악명
으로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를 안고 변합니다.. 부정이라는 것이죠,
아이로 인해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서 살아가게 된 그에게 과거의 은원은 사필귀정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자신의 미래를 바라본 아이에게서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보게된 사혈공은 아들을 묻고 덧없음과 회개를 깨닫게 되죠
그리고 자신의 은원과 과거의 짐을 짊어진 인간으로서 돌아오게 됩니다..
허황되고 오버스러운 무협지의 과장보다는 인간적이고 강호무림이라는 생존의 경쟁속에서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딜레마를 풀어나가는 외롭고 고독한 한마리의 늑대의 아픔을 가슴에 담은 한 아이 잃은 아버지의 심리에 대한 짧
고 간결한 이야기가 오히려 집중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무척 재미있었구요, 여느 무협지에서 보았던 과정
의 중요함을 단편답게 싸그리 제거해버리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짧은 단편 무협지의 느낌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사혈공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심리와 강호의 삶은 무협의 세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
실의 아픔과도 맞닿아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재미지게 잘 읽었구요, 늘 건승을 기원합니다.^^
세상사 권선징악은 없을 지라도 사필귀정은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요, 그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지어준 고통과 아픔들,
모두 자기가 짊어지고 간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수많은 짐이 무엇인 지 제대로 알게 되는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