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얼마전 터키의 한 해변에서 숨을 거둔채 떠밀려 온 시리아 아이 쿠르디의 사연을 접하셨을 겁니다.
저는 난민문제에 대해 냉소에 가까운 무관심을 보이는 사람입니다만, 지금은 삭제된 그 아이의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멈추질 않더군요.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살면서 별별 사건을 다 보지만 제 경우 가장 화가 나고 감정이입이 되는 사건은 아이들에 대한 범죄였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이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종족번식과 번영의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많이 다른가하는 의구심과 함께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저도 아이가 있습니다. 물론 제 아이니까 제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예쁘겠지요.
아이를 얻고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냥 스쳐지나던 주위의 다른 아이들을 살피게 되었다는 겁니다.
내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만큼 다른 아이들에 대한 보호욕구와 관심이 생기는 것이 처음엔 희안하기도 했고, 나도 부모가 되어간다는 것인가 하는 흐뭇함도 있었는데, 언젠가 생각해보니 그건 부모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제 주위엔 자신의 아이가 없어도 주변의 아이들을 끔직이 챙기고 잘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외동으로 자라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는 것이 서툴렀던 제가 이제서야 부모가 되면서 인간(人間), 즉 사람사이에서 사는 법을 배워가는건가하는 생각도 가져봤습니다.
서두가 장황했습니다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은서에겐 삶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히 서술되어있진 않지만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나이로 추정되는 은서는 세상에 대한 기대나 희망같은 가치를 진작에 놓아버린 듯한 모습으로 등장을 합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가정, 기초적인 자존감조차 유지하기 힘든 가족구성원들의 포기와 절망으로 가득 찬 모습은 최근 큰(오타 아닙니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어떤 영화를 떠오르게 하더군요.
은서 또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녀의 선택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녀는 과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좀비가 되어 단번에 집안의 빚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삶을 내려놔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돌아보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님은 은서의 행동에 대해 너무나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삶의 무게와 함께 벗어버리려하는 걸 표현하시려 한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기는 요즘의 세태를 꼬집으려 하신 건지는 분명치 않지만 주사를 제 때 맞지 않으면 좀비가 되어버린다는 걸 알면서도 은서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험 중 경찰이 나타나 꼬여버린 상황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은서는 그냥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후반부에서 부모를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의 목숨값을 건네는 부분을 보면 은서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알 수없는 목막힘을 느끼게 되더군요.
사업실패로 그냥저냥 사는 아버지와 충격으로 몸져누운 어머니는 아마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고, 그들의 언행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서 그런지 별로 놀랍지는 않았지만 딸아이가 좀비가 되었다는데도 갚을 빚이 모자란다는 걸 표현하는 대범함이나 시체같은 딸의 외관을 보고서도 그러려니하는 태연함에는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되어 분노의 일갈을 날릴 뻔 했습니다.
수상한 실험을 하는 의사와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심청’이라는 약이름에 은서가 냉소를 흘리는 걸 보면 은서 또한 어디에도 기대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포기 내지는 초연해진 것 같아 더욱 부모에 대한 원망이 더해지더군요.
상황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요. 망하고 싶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고 모두 잘해보고자 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던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아이들이 삶에 대한 의지와 기대를 포기하게 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닐까 싶네요.
이 글이 그저 낙천적인지 냉소적인지 알 수가 없는 한 여인의 발버둥인지 가족해체가 너무나 빨리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세상에 대한 살짝 비틀린 표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중요한 건 은서가 너무나 쉽게 삶을 내려놓았다는 겁니다.
그게 자꾸 가슴 한편을 아프게 하고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리고 있네요.
이 글의 경우 내용의 무게와 울적함에 비해 문체는 가볍고 깨끗합니다.
술술 잘 읽히니 마지막까지 읽고나서야 뭔가가 가슴속으로 몰려오는데, 이것도 작가님이 의도하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춘 단편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의 쿠르디와 은서가 생기지 않기위해 제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게 문학의 힘이라면 이 작품은 성공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