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를 읽고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 (작가: 최의택, 작품정보)
리뷰어: , 19년 6월, 조회 202

저는 장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장르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봐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소재에 따라서 장르를 결정해요.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 같은 경우에는 멍청한 제 기준으로 ‘좀비가 등장하는 현실적인 로맨스’ 입니다. 좀비가 메인이 아닌 것처럼 보였거든요. 작가 코멘트를 보니 작가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쓴 것 같아요.

 

좀비는 재밌는 소재지만 다소 식상하기도 합니다. 좀비가 나오는 이야기라고 하면, 어느 날 좀비가 나타나 세계가 반쯤 멸망하여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며 인간들이 저항하는 내용이 바로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작가들은 다양한 변주를 합니다. 생존을 위해 인간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워킹 데드 시리즈라던가 기차라는 한정된 장소를 사용하여 긴박감을 더한 부산행처럼요.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도 나름대로 변주를 시도했습니다. 좀비 사태가 끝난 뒤 세상에 남은 좀비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죠. 아쉽게도 신선한 시도는 아니에요. 한국 영화 이웃집 좀비, 웹툰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영국 드라마 인 더 플래시 등 비슷한 시도를 한 작품은 이미 존재합니다. 하지만 비슷하다고 해서 비판받을 것은 아니에요.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고 장르 바닥은 하늘보다 더 좁으니까요.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재밌으면 아무 문제 없어요.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의 세계관은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작품 초반에 좀비와 인간이 함께 사는 것이 허용되고 비장애인과 같은 의미에서 비좀비라는 어휘를 쓰길래 보통의 좀비와는 다르게 폭력성이 덜하고 전염성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라면 좀비 사태를 겪은 국가가 비좀비들을 위한 마을을 내버려 둘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에 나오는 좀비는 폭력성과 전염성 둘 다 있습니다. 좀비 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이미지의 좀비요. 미호의 남편이었던 좀비가 도원을 죽이려 들고, 개발도상국에서는 좀비 때문에 마을 사람 전체가 좀비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요. 제대로 된 정부라면 좀비를 철저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인데 좀비관리법 하나만 만들어 놓고 민간인에게 좀비를 허락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키우는 개도 제대로 관리 못 해서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는데 좀비는 오죽하겠습니까. 미호 같은 사람들의 부주의로 대한민국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요. 설정을 조금 바꾸면 현실성이 붙을 것 같습니다. 좀비의 폭력성이 적고 물려도 전염이 안 된다거나 정부가 엄격한 통제를 하는데 차마 가족과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 몰래 좀비 가족을 둔 마을을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비록 현실성은 떨어진다고 해도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에서 등장하는 좀비는 상징적이어서 재밌는 면이 있습니다. 사랑 뒤에 오는 권태가 좀비가 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좀비가 됐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가족이니까 헤어지기 뭣해서 같이 사는 것 같거든요. 남편과 부인이 더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지만 이혼할 이유가 없어서 같이 사는 일은 현실에서도 흔하니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현실보다는 좀비가 나아요. 좀비는 아무런 말도 안 하니 상대도 변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아름다웠던 시절만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새로운 사랑을 찾기위해 떠난다고 해도 ‘예전’에 사랑을 나눴던 상대가 좀비인 것이 낫습니다. 현실에서는 이제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하겠다고 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듣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내 남편이 내 부인이 좀비가 됐다고 하면 주변에서 이해할 겁니다. 작품에서의 인물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최소한 저는 이해해요. 과연 좀비좀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좀비와 살지 궁금하네요.

 

저는 영원한 사랑을 믿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사랑은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요. 도원은 앞으로 살면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극소수에 포함된 것 같아요. 아내인 수지가 좀비가 됐는데도 미호에게 눈길도 안 주니까요. 심지어 미호가 은근히 유혹하는데도 무덤덤합니다. 그의 가슴에는 수지 외에는 들어갈 곳이 없거든요. 아주 멋진 남자입니다. 수지가 좀비가 아니었다면 저는 도원을 선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수지는 좀비입니다. 감정을 나눌 수 없는 상대인데 흔들리지 않고 사랑을 계속해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사랑을 받지 않아도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멋지긴 해도 일방적인 사랑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원의 사랑은 스토커의 그것과 비슷해요. 뭐 이 일방적인 사랑을 아가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도원은 광적인 사랑을 합니다. 아마 수지가 권태를 느끼고 이혼을 하자고 하더라도 도원은 수지를 계속했을 거예요. 서로 좋았던 시절만 떠올리면서요.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좀비가 아니라 도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이고 제멋대로인 대다 좀비 관리를 못 해서 대한민국에 좀비 사태를 몰고 올 뻔한 미호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인물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해도 행동을 보면 사랑이 없어요. 권태기에 빠진 전형적인 사람의 모습입니다. 관리를 제대로 해서 남편이었던 좀비가 난동을 부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곧 남편이었던 좀비를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러 떠났을 것 같은 인물이에요. 주고받는 사랑을 원한다는 면만큼은 정상적으로 보여요. 저는 도원보다는 미호를 더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느낄만한 감정이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의 서사는 무난합니다. 기승전결이 확실히 있고 “1막에 권총을 소개했다면 3막에서는 쏴야 한다. 안 쏠 거면 없애버려라”라는 체호프의 말대로 안정제라던가 주머니칼 같은 도구를 잘 사용해요. 주머니칼은 조금 작위적이지 않나 싶지만 단편이니만큼 이해가 됩니다.

 

종합하자면 나쁘지 않은 작품입니다. 좀비 사태 이후 좀비가 된 가족이라는 변주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전에 말했다시피 아쉬운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좀비좀비를 절박한 환경으로 만들고 도원의 감정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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