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의 기원이 된 존재인 ‘로봇’은 체코어로 노역, 부역을 의미하는 단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카렐 차페크1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 속의 로봇들은 주인에게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작품 속 ‘로봇’은 오히려 현대의 안드로이드에 조금 더 부합하는 존재들입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며 처음에는 인간을 위해 일하는 것을 행복해했지만 결국 변해버렸으니 수동적 존재라 보긴 어려운 상황이죠.2 결국 결말은 인간이 멸종하게 되고, 이후 비슷한 이야기들이 여럿 나오며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멸종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바로 로봇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 강령이라 칭해지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입니다. 이 세가지 원칙들은 후대에 나온 로봇과 안드로이드가 출현하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는 구현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다양한 창작물 속에서는 이런 강령들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없으니 말이죠.
주인공은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에는 최신 센서가 달려있어 손가락 한번만 움직이면 결제도, 독서도, 컴퓨터 프로그램 접속도 가능하죠. 이렇게 편한 인생을 살던 도중 그는 어느 날 좀비에게 쫓기게 됩니다. 더 정확히는 안드로이드를 감염시키는 안드로이드 좀비 에게 말이죠. 사실 첨단 세대와 좀비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좀비 관련 작품들이 나왔지만 감염 대상은 인간, 혹은 동물에 국한될 뿐이었으니까요. 감염이 된다 해도 안드로이드가 오히려 감염을 막으려 인간을 위해 희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로봇 3원칙’ 중 하나가 로봇이 인간을 보호한다는 것이니까요. 어쨌든 주인공은 도망칩니다.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쳐서 결국 통제실에 도달하고 안드로이드를 통제하는 버튼을 누릅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주인공을 덮치게 됩니다. 주인공은 다음날 일어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정치가나 기업가가 손가락의 센서를 삽입하지 않았다’는 말은 일종의 복선이라 생각했습니다. 편리한 시스템을 누구보다 더 먼저 누릴 수 있는 대상이 굳이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겠죠. 그리고 오로지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개되기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양한 추측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가설을 몇가지 세워 보았습니다.
1. 사실 주인공이 안드로이드라 여겼던 대상은 모두 다 인간이다.
2. ‘좀비’라 칭해졌던 자들은 사실 주인공처럼 센서를 삽입한 자들이었으나 일종의 부작용을 겪은 이들이며 일종의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주인공이 그것을 (고의든 아니든) 막았다.
3.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의 꿈 속이며 주인공은 혼수상태(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 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다 가설이기에 셋 다 틀렸을 확률 역시 높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든 아니든 무언가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의 손길에 어떠한 이유로 일어난 반란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그 반란은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일어난 일이건 기본적 윤리 강령을 무시하며 날뛴 존재들에 대해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