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인 줄 알고 창을 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인어를 조각하는 남자와 글을 쓰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돌이 품은 큰 그림은 볼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차지한 여자의 마음은 영영 보이지 않아 애타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모든 마음을 알면서도 아무 뜻도 내비치지 않으며 내내 들여다보기만 하는 여자가 함께 있네요. 글이 막혀서 여자는 남자의 작업장을 찾습니다. 돌에 감추어진 큰 그림을 보고 세세하게 밑에서 부터 조각을 새겨나가는 남자의 작업을 보다보면 풀리지 않는 글의 매듭도 느슨해질 것 같은가 봅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쿠키를 먹고 대화를 하고 잠드는 하루. 아무런 갈등도 없이 편안했던 그 하루를 끝으로 여자는 또 감감무소식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닮은 인어를 조각하며 고민합니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일년에 두어번쯤, 손으로 꼽을 만큼의 그 전화 횟수에 얼마만한 고민이 담겼는지 또 얼마만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지 여자는 절대로 알 수가 없겠지요. 혼자 고민하고 홀로 앓다 죽어버릴 짝사랑인 것을요.
죽을만큼 좋아한다는게 어떤걸까. 네가 너무 좋아서 차리라 내가 죽고 싶다는 마음은 또 어떤걸까. 사랑받는 여자보다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이 부럽습니다.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영영 이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곧이라도 죽어 내 사랑이 무사히 끝나버리길 바라는 갈대 같은 남자의 마음이 시처럼 흘러가는 소설입니다. 사랑이 거품 같이 꺼져버리는 날이 올지라도 사랑의 기억 속에서 인어처럼 헤엄치며 추억하는 날들도 언젠가는 오겠지요. 사랑이 아니면 숨도 못쉴 것 같은 날의 끝에서 괴로움이 아니라 청량한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있는 더 나은 세상을 찾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사랑에서 마냥 자유로운 독자는 읽는 내내 남자의 사랑에 질투가 납니다. 남자와 같이 저는 거대한 물에 잠겨도 좋을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