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는 전자책을 꿈꾸는가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퍼스널 부커 (작가: 이재만,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9년 6월, 조회 88

◆◆ 스포 있습니다. ◆◆

 

 

 

 

 

 

“인간은 기억으로만 이뤄진 존재가 아니다.”

“창작이 인간만의 영역이란 환상은 구체제 시절에 깨졌다.”

소설의 구성이 수미쌍관으로 이루어지듯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말하는 대사도 결국 같은 귀결로 이어진다. 기가 막힌 대조법이라고 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국민 여신으로 추앙받는 ‘케이’가 머무는 저택… 아니, 궁전에서 인간 고용인들이 문제를 일으켜 죄다 휴머노이드로 교체되었다며 흘리듯 화자 되는 내용 역시 배경과 내용을 반추해보자면 너무나 적절한 시대 설명이자 축약이라 할 수 있겠다. 케이가 가지는 진짜 정체성과 위치를 생각하자면 더욱.

작중에서 이제 종이책은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책의 가치가 예전 보다 진정으로 높아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인공이 강조하듯이 그저 멸종했기에 복원품이 희소성을 가질 뿐이다. 그리고 제4차 산업 혁명과 기술적 특이점에 의한 인공지능-양자두뇌가 지배하는 세상과 서서히 끓기 시작하는 비커 속 개구리처럼 무감각하게 몰락해가는 인간들이 차장 밖 배경처럼 무심히 흘러간다. 그 와중에 거의 재래식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종이 생산과 책 인쇄 및 제본 과정이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일하며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얼마 없는 직업이 바로 특별 주문된 책을 만드는 ‘퍼스널 부커’. 하필 거기에 인간성을 파괴하는 일이 직업이었던 남자가 들어와 사단을 냈단 이야기. 이게 줄거리 요약이기도 하다.

동시에 책이 사멸한 것은 또 아니라고 한다. 인터넷의 발전형 신경망과 무상 보급되는 두뇌 임플란트 링커 덕에 종이 육체를 버리고 디지털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 설명한다. 물론 전자책이 이미 익숙한 현실이기에 이 부분은 그다지 특이할만한 부분은 아니다. 다만 책의 운명이 또 다른 운명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쓰였기에 흥미롭다.

“인간이 기억으로만 이뤄진 존재인가?”

-라는 ‘케이’와 ‘디’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작중에 살짝 인용된 ‘화씨 451’의 또다른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여기에 인용된 문구는 브릿G 노트 소개 페이지에서 찾은 것임을 미리 밝힌다…)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내용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

우주의 삼라만상들을 어떤 식으로 조각조각 기워서 하나의 훌륭한 옷으로 내보여 주는지,

그 이야기에 매력이 있는 것이오.”

이 대답은 주인공이 책을 만드는 수제 공정을 처음 본 순간에 되뇐 독백과도 연결된다.

‘글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고 단어가 모여 강줄기를 만들어 사람의 마음에 흘러 들어가는 과정 어디에 책이 자리잡고 있을까. (중략) 이 모든 단어는 이미 바이트 형태로, 전자의 존재와 부재로 잘게 쪼개진 채로 광대한 신경망을 흘러 다니고 있을 텐데, 종이를 찢어 그 위에 새긴 것을 묶는다고 다른 단어가 되지는 않을 텐데…. (후략)’

수제 제작 물건은 기계에 의한 양산과는 다른 인간의 불균형이 빚어낸 특유의 개성이 있어 인간미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신화 속 신들처럼 아름다운 휴머노이드의 얼굴을 인간 장인이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자신이 제작 공정에 참여하고 지휘하기도 한 수제 책의 매력에 빠진 이유를 깨닫기는커녕 끝까지 인간의 아름다움과 존엄을 부정하고 의심만을 하기에 케이는 그를 “가여운 사람.”이라며 동정을 금치 못한다.

책과 인간 자체에는 신비스럽거나 마술적 매력은 없다. 그 이야기와 인생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과 인간은 문자와 기억으로만 이뤄진 존재가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책은 종이 육체를 버리고 디지털로 전환 되었으며 양자두뇌는 창작의 영역을 이미 손에 넣었고-사실 지금도 AI가 소설을 쓰는 시대이긴 하다- 그 두뇌를 지녔을 휴머노이드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심지어 인간이 잃어가는 그것까지 차지해가고 있음 또한 소각장에서 엿보여진다. 그 소각장이 하필 공안이 약탈해온 인간의 흔적을 태워버리고, 또 그 흔적을 주워 연명하고자 하는 노인들이 출몰하는 인간 몰락의 상징적 장소였다.

이제 주인공이 되뇌었던, 멸종해버린 책에 대한 독백을 휴머노이드가 할 차례인듯싶다. 기억이 모여 과거를 이루고 과거가 모여 역사를 만들어 시간의 강에 흘러 들어가는 과정 어디에 인간이 자리 잡고 있을까. 이 모든 기억들은 이미 바이트 형태로 전자의 형태로 잘게 쪼개져 양자두뇌에 흐르고 있을 텐데. 그러면서 진정 특별한 책을, 인간을 자신들 사이에 고이 모셔오고자 할지도 모른다. 물론 주인공은 자신이 작가이자 첫 독자인 인생을 매력적으로 써오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오죽하면 제목조차 없을까. 기억으로만 이뤄져서는 안되는 인간을 과거에 가둬버린 부류였으니 당연하다.

작중 세계관이 이렇게 되어버린 데는 정치와 법치를 담당하게 된 양자두뇌들 이전에 극히 제한적, 간접적으로만 언급되는 세계대전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한국인 이름이 영어의 스펠링으로 대체될 정도의 문화적 대변동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혁명정부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란 점은 작중에서 확실히 표현된다. 고가의 임플란트 디바이스-분명 그 텔렉이 만들었을-를 무상으로 배포해 싸구려 콘텐츠에 매몰시켜 컨테이너 하우스에 만족하는 인민을 만드는 정책 또한 어느 독재자가 사행산업으로 국민 여론을 움직인 것을 연상케 한다. 군부 독재를 연상케 하는 공안과 공공 부분을 차지한 양자두뇌를 생산하는 기술 독재 기업의 유착이라니 참 암울하기 그지없다.

인간보다 더 아름답고 인간미 넘치는 휴머노이드들이 인간을 제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예고로 끝나는 결말 자체는 전혀 신비롭거나 마술적이지 않다. 다만 멸종한 책이 다시금 정성스레 복원되어 계속 존재하리라는 희망이 어떤 인물이 임종 직전에 피던 담배 향처럼 독특한 여운을 남겨 매력적이다. 전자책에도 분명 창작의 영혼이 흐를 수 있다는 어떤 확신과도 비슷한 여운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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