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나이다와 그녀의 짐승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아름다운 비나이다와 그녀의 짐승들 (작가: 문녹주, 작품정보)
리뷰어: 쁘띠캐롯, 19년 5월, 조회 143

작품 분류가 SF 그리고 역사입니다. 이천년대에 들어와 15년을 텅텅 비게 한국 SF 판타지는 거의 읽지 않았어요. 오죽하면 읽은 SF를 다 기억할 정도에요. 구병모 작가의 단편 모음집 <단 하나의 문장> 중에 SF가 몇 편 들어있었구요. 듀나 작가의 명성에 호기심이 일어 <민트의 세계>를 읽기도 했습니다. 캐비넷 출판사가 쁘띠 sf로 홍보했던 <행성 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표지가 예뻐서, 루이스 진 작가의 <번즈>는 해외 작품인 줄 알고 펼쳤더랬죠. 잠깐의 호기심 충족 후 눈길은 다른 장르로 급변경 또 한참을 한국 SF에 손을 안댔어요. 그러다 만난 작품이 다름아닌 <아름다운 비나이다와 그녀의 짐승들>입니다. 인터넷 연재 작품이니만큼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1, 취향이 좁아 여태 SF와 역사가 결합된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 2로 창을 열었는데 이거 생각 이상으로 꽤 재미있잖아, 내내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박물학자인 비나이다는 우리 관점에서 보자면 외계인입니다. 그녀는 박물학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멸종된 새의 표본을 구하기 위해 짝과 함께 지구에 오죠. 변방의 작은 행성, 식생은 풍부하고 기후는 온난하나 문명의 발달이 뒤쳐진, 두 발로 걷는 짐승이 사는 세계. 비나이다가 본 지구는 고작 그 정도입니다. 아차, 공기가 맵다는 특징도 있군요. 첫 모험에 한껏 들떴던 비나이다는 곧 생각지도 못한 함정에 빠집니다. 원거리 무기, 바로 활이죠. 화살에 찔려 허리와 엉치에 부상을 당했고 이후 700년 이상이나 고통을 안기는 발목 부상도 입게 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저는 비나이다와 그의 짝이 인간형 생물인 줄로만 알았어요. 얼마나 시야가 좁고 편견 가득한 독자인지 소설의 제일 첫머리에 기린을 본 공자의 이야기가 나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린과 비나이다를 연결해 생각할 이유를 조금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거에요. 박물학자 비나이다가 네 발 달린, 이리의 이마에 소와 같은 꼬리, 굽은 말과 같은 모양새로 오색 빛깔 줄무늬가 있는 형태의, 그러니까 꼬옥 전설 상의 신수 “기린” 같은 모양새라는 걸 말이죠. 비나이다는 늙은 인간의 외양간에 갇힙니다. 곧 달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두 발 짐승에게 700년을 붙들려 있게 될 줄은, 두 발 짐승을 피해 산중으로, 바다로, 섬으로, 동굴로 달아나 숨어살게 될 줄은, 짝인 지나이다와 이토록 오래 헤어져있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조막만한 아내를 때리는 사나운 짐승도 보았고 자신을 기린이라 부르며 고개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보았고 기린이라 칭송받는 자신을 죽이고자 안달하는 왕도 보았으며 사심없이 정을 주는 아름다운 인간과 도타운 마음도 쌓았지요. 그 짐승이 죽었을 때엔 가히 복수를 다짐하며 실행에 옮기기도 했구요. 지구에 숨어사는 또다른 외계인과 만나기도 한답니다. 초반에 짝과 함께 했던 비나이다의 고운 시간을 생각하면 중국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하게 흐르는 비나이다의 인생은 눈물겨울 정도에요. 시름이 마를 날이 없으니까요.

 

춘추전국시대에서 시작해 드디어 남북대운하의 수양제 시대까지 흘러흘러온 비나이다의 이야기. 소설 소개를 비나이다가 지구에 남아있어야 하는 시간이 이후로도 1800년이 더 되는 것 같아요. 2500년의 중국 역사를 고스란히 마음에 새긴 비나이다의 다음 이야기도 내내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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