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에 대한 인간의 배척을 고찰하는 과대망상 리뷰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냉장고 안의 거미 (작가: 무락, 작품정보)
리뷰어: 소윤, 19년 5월, 조회 24

1. 모두가 공감하는 감각

벌레 무서워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을, 그것도 매우 감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입니다. 자취방 화장실에 바선생이 산책을 나오셔서 화장실 문을 잠가놓고 볼일도 못본 채 한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다가 친구의 (한숨섞인) 문자가 시키는 대로 집앞 마트에서 바퀴벌레 퇴치약을 사 오고, 다시 한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다가 겨우 화장실 문을 열고, 이제는 바퀴벌레가 안 보인다는 사실에 더 끔찍해하고, 으허허허허허헝 하면서 약을 미친 듯이 뿌려둔 후에 동네 카페로 나가 (방 책상에 앉아있으면 자꾸 화장실 문만 쳐다보게 되어서) 두 시간을 공부하다 돌아와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바선생께서 배를 드러낸 채 영면에 들어 계셨던 기억이 나네요. 시체 치우는데는 다시 한 시간쯤 걸렸습니다. 주인공이 거미가 닿은 딸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했듯, 전 화장실에 들어가는게 너무 끔찍해서 평생 안 하던 락스청소까지 했더랬죠. 제가 유난인 편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마주할 수 없는 무서움의 대상이 내 공간을 침범했을 때 발생하는 내적 드라마는 무척이나 역동적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본 사건이 화장실에 바퀴벌레가 나와서 약을 뿌려 잡았다, 라고 요약될 수 있는 간단한 것이라도 말이에요.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은 거미를 보고, 무서워하고, 거미가 어디서 왔을지 고민하고, 고통받습니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동생이 등장해 거미를 치워주는 것까지가 작품의 줄거리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 하지만 진지진지열매를 먹어보자면

물론 그런 사실은 내 알바 아니다. 내가 거미도 아닌데 거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추위를 느끼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나는 어떻게 거미가 냉장고 안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고 무엇보다 거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그게 거미라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황급히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두려움은 낯섦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이 거미를 ‘극혐’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명시되지는 않지만 – 애초에 이런 종류의 거부반응은 언어화할 수 없는 근거에 기반하긴 마련입니다 – 어쨌든 거미는 나와 닮은 점이라고는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거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추위를 느끼는지” 당연히 알 턱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한 것은 왜 이것이 내 영역을 침범했는지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 사람이 타자를 배척할 때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매커니즘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자’(他者)는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로 되어 있지만, 개념이 먼저 사용된 서구에서는 the Other라고, 보통 ‘사람’의 개념이 들어가 있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지요. 물론 대부분의 이론에서 자아 외의 사람을 가리키기는 하지만, 저는 인간이라는 분류마저 제외한 타자 개념을 좋아합니다. 타자와 관계맺는 것은 나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위험한 행위라, ‘나’는 흔히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타자를 내 세상으로부터 차단시키곤 합니다.

건포도만한 작은 거미는 점점 내 마음속에서 커져 갔다. 직시하지 못한 공포는 그 덩치를 제멋대로 키워나가는데 나의 공포도 그러했다.

그리고 직시하기를, 받아들이기 시도하기를 거부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비이성적으로 극대화되기 마련이지요. 사실 별 게 아닌데도 말이에요. 주인공은 자신이 이미 관념적으로 배척해 놓은 거미라는 존재가 나타났을 때 냉장고 문을 닫아버리고, 작고 힘도 딱히 없는데 추운 곳에 갇혀 고통받는 거미는 사라지고 악독하며 위협적인 타란툴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셈입니다. 사실 나에게 큰 피해를 미치지도 않는, 심지어 나보다 약한 존재는 나를 위협하기 때문에 제거해야 하는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거미 가지고 별 얘기를 다 하네요. 소재가 거미일 뿐이지, 주인공의 내적 정서와 사고의 드라마는 그 대상이 거미보다 큰 동물일 때에도, 사람일 때에도, 사람들의 집단일 때에도 유사한 면모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헛소리에 가까운 주저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제가 주인공이었다면 전 그 날 밤에 아마 변기에서 거대한 거미가 기어나오는 꿈을 꿀 거예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