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낭만을 가장 잘 살린 작품 중의 하나로 은하철도 999가 생각난다면 그건 이 작품에 나온 ‘모호’라는 인물 때문일 터이다. 베일에 싸인 과거와 긴 수명, 거의 해적과 다름없지만 물질적 이득이 아닌 자신만의 신념을 위한 행동. 그리고, 그걸 바쳐줄 뛰어난 두뇌와 전투력은 줄곧 마츠모토 레이지 작품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연상된다. 정말이지 메텔이나 에메랄다스가 현재에 그려졌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다.
전투는 딱 한 번뿐이지만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전략과 무기로 활극다운 전개와 납득할만한 귀결을 이루어 퍽 즐겁게 읽혔다. 단순히 총 쏘고 칼 휘두르는 액션 이상으로 상당히 우아한, 모호라는 인물을 드러내기에 너무나 적절한 전투 묘사였다.
아쉬운 요소가 있다면 더티 할리가 그 호언장담과 출신, 분량에 비해 너무 순둥이에 수동적으로 그려졌다는 점 하나다.
이 장르에서 인물 이상으로 중요한 우주 배경 설정 역시 짧은 분량 안에 인상적으로 그려내었다. 고양이를 닮은 행성인들과 그들의 아픈 역사. 그리고 그와 정반대로 해적의 역사를 가진 행성이 모호라는 인물을 통해 마치 한 행성의 다른 지역인 듯, 그러나 아득한 우주의 간극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다. 배의 인공지능과 나누는 만담 또한 소소한 재미를 선사해준다.
모호의 배는 자세한 외견 묘사는 안 나오지만 고대의 배라는 점이 강조되어서 그런지 고전적인 갤리선이 자꾸만 연상되어 버린다. 그리고 스페이스 오페라는 공상 과학의 한 갈래이지만 과학적 현상보다는 신화에 가까운 모험담의 서사가 중심이다.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한 바다 항해의 활극이 우주로 확장되어버림은 지동설 등장 이후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길지 않은 단편 분량 속에서 아주 오랜만에 옛 향수가 떠오르는 우주 활극물을 보게 되어 참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