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할머니가 어디 있어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레모네이드 할머니 (작가: 현이랑, 작품정보)
리뷰어: 유이남, 19년 4월, 조회 140

‘할머니’와 ‘탐정’이라는 두 단어는 언뜻 보기에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 않죠. 그러나 그 독특한 어긋남에서야말로 케미라는 게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느 작가가 이 케미를 놓치고 싶어 할까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제인 마플’ 이후로 ‘할머니 탐정’ 캐릭터가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 온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레모네이드 할머니> 역시 그 가지 끝에 움튼 하나의 작품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첫인상은 독특했습니다. 이국적인 휴양지처럼 묘사되는 마을의 모습과, 너무나도 괴팍해 보이던 할머니와의 대비 때문일까요. 세상에, 첫만남부터 괴성을 지르며 자기 팔에 인슐린 주사를 놓는 할머니라니요! 뿐만 아닙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언뜻언뜻 드러나는 할머니의 과거 역시 평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군인이었다가, 사채업자였다가, 지금은 땅부자. 지팡이에서 곰방대를 뽑아내 뻑뻑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 같은 할머니가 어디 있어!”라는 북두신권 속 명(?)대사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만큼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그다지 ‘할머니스러운’ 인물이 아닙니다.

이런 설정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독특해서 재밌다가도, ‘이럴 거면 굳이 할머니가 아니었어도 상관없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실제로 그런 의문이 들었느냐 묻는다면, 저는 단칼에 ‘아니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분명 이상하고 독특하지만, 틀림없이 ‘할머니’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양립이 가능한 걸까요. 저는 그것을 할머니라는 육체성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전혀 할머니스럽지 않은 이야기나 행동을 하다가도 때맞춰 인슐린 주사를 맞고, 뛰지 못해서 잰걸음으로 현장까지 이동하고, 치매 때문에 건망증을 앓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설은 ‘늙은 육신’이라는 형태로 레모네이드 할머니라는 인물에게 한계를 부여합니다. 이는 현실의 노인들이 겪는 육체적인 어려움입니다. 이로써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그 모든 비현실적인 설정과 함께하면서도, 여전히 할머니일 수 있습니다. 이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없는 것’ 사이를 치열하게 오가며 탐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통찰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닙니다. 소설은 도란마을의 다른 노인들을 통해 ‘늙은 육신’을 계속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경우와 달리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단단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소설 속에서 ‘늙은 육신’이란 단순히 써먹기 좋은 캐릭터성에 머물지 않고, 현실과 결부되어 실재하는 한계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늙은 육신’을 묘사하는 서술자의 태도 역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노인들은 ‘불쌍한 존재’, ‘힘 없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소설은 ‘노인의 육신’을 묘사하면서 ‘노인의 정신’‘노인의 성’을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약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돌보는 일은 아주 힘들고 어렵습니다. 미미 시스터즈를 씻기려면 진땀이 납니다. 빨갱이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지호 할아버지와 웃통을 벗은 할머니는 ISB치매 증상으로 인해 성적 행동(그래서 결과적으로 추행으로 이어지는)을 일삼습니다. 하기 싫다며 떼 쓰는 노인을 제지하는 일은 성인 남성 간호사에게나 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이를 가졌습니다.

노인들도 한 때는 젊었습니다. 우리도 늙으면 노인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들, 젊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 권력과 사랑과 섹스를 비롯한 수많은 욕구들을 우리는 늙어서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깔끔히 무시한 채 노인을 ‘말이 안 통하는 약하고 불쌍한 존재’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기만일 것입니다. 기만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선행은 위선일 것입니다. 소설은 노인들의 모습을 일일히 묘사함으로써 우리 내면의 기만과 위선을 폭로합니다.

그런 점에서, ‘도란마을’이라는 공간은 커다란 기만과 위선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치매 노인들을 위한 최고급 호스피스 빌리지는 노인을 위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치료와 여가, 문화생활까지 전부 다요. 그러나 그 실상은 보호자들의 속물적인 자기만족이며, 원장의 정치적, 경제적 수단임을 소설은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한 꺼풀 더 벗겨보면, 그 속에 있는 것은 우리(젊은이)의 의식입니다. ‘치매 걸린 노인들에게 이 정도면 됐다’, ‘치매 노인에게 이 정도 혜택을 제공하다니 우수한 병원’이라는 생각. 노인들은 분명 약자이기에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계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혜적인 태도와 기계적인 통제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지는, 조금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리라 생각합니다. (도란마을을 지탱하는 우리(젊은이들)의 의식, 그로 인해 소외되는 대상이 오히려 젊은이인 이수씨와 정훈씨라는 점은 어긋난 듯한 충격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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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와 심각한 이야기, 통통 튀는 서술이 어우러진 즐거운 소설을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건필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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