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와 판타지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마녀와 총잡이 (작가: 아이덴타워, 작품정보)
리뷰어: 코르닉스, 19년 4월, 조회 194

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마왕용사물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판타지 장르의 하위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르의 특징은 마왕과 용사의 갈등이 핵심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서로 반목하면서 마왕과 용사가 갈리는 것이 아닌, 마왕과 용사라는 구도 자체가 부각됩니다. 그렇기에 이 장르는 기존 판타지에 익숙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녀와 총잡이>도 그런 마왕용사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기존의 마왕용사물과는 정말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건 총잡이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로 시대적 배경입니다. 물론 전통적(?)인 판타지 세계관에 총이 등장하는 건 드물지 않습니다. 주로 드워프의 기술력으로 등장하죠.

하지만 <마녀와 총잡이>는 현실로 따지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그러니까 제국주의와 개척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고요. 스팀펑크가 그나마 비슷한 시기라 할 수 있지만 따지자면 스팀펑크가 거의 끝날 무렵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열강과 식민지. 폭력적으로 느껴질만큼 가치관이 뒤바뀌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과 동시에 무차별적인 개발과 폭력이 만연하던 시기죠.

 

총이 드물지 않은 세계에서 마왕용사가 등장하기에는 여러모로 낯설어 보이지만 작품은 기대보다 더 매끄럽게 전개되었습니다. 오히려 총이 등장하면서 극에 긴장감이 상당히 유지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작중 주연들은 자기의 분야에서는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엑스트라에게도 위기감이 조성되는 건 그들이 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아마 작가님이 정말 많이 고민했을 거 같네요. 이런 시대배경이 <마녀와 총잡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조금 설명이 많은 듯한 느낌도 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도 설명이 많은 부분은 주로 판타지 고유의 부분입니다. 국가나 체계나 마법이나 몬스터처럼요. 하지만 <마녀와 총잡이>의 배경은 현실에 기대고 있는 측면도 상당히 낯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혹 작가님의 욕심도 보이지만은 설명이 늘어질 수 밖에 없을 거 같네요. 다행히 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상세한 측면이 가공의 세계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실에서 따왔기에 판타지와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묘사가 그러합니다. 마법과 다양한 종류의 마족이 등장한다면 현실보다 더욱 남녀에 대한 역할 구분이 흐려지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묘사를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데다 이런 묘사가 나오는 건 주로 인간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추적자 일행이라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습니다.

 

소설의 다른 장점이라면 상당히 느리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건 묘사, 문체, 기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기술적인 측면은 회가 진행이 될수록 개선됩니다. 색다른 기법이 도입되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이나 캐릭터의 조형이 그러합니다. 차근차근 쌓아가는 스타일입니다. 최근에는 잘 쓰이지 않는 편이죠.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쌓아놔야 캐릭터들에게 몰입하기 좋으니까요. 캐릭터들의 관계를 이정도로 쌓아놓지 않았다면 연출에서 어색함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카니가 루나를 구하러가는 부분은 둘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빠르게 납득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은 피카니의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레스가 날아오는 고폭탄을 맞추기 위해서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그렇네요. 레스의 성격을 알 수 있으면서 그 성격을 보강해줍니다. 작품 태그에 적으신 버디물이라는 점에서도 좋습니다. 버디물은 두 주인공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에피소드를 쌓아야 하니까요.

 

캐릭터들의 사연을 풀어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한번에 풀지 않고 완급 조절하면서 이야기에서 풀어내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인공들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소설에서는 더더욱 그러하고요. 주연들에게 비밀이 있다는 걸 알게되니까 등장인물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사연과 초반 동기가 약하게 연결되는 점도 있지만 이를 의식한 것처럼 꾸준히 보강해주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떠오르는 장면은 많은데 막상 적으려니 정리가 쉽지 않네요.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세계관이나 흐름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부분만 익숙해지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판타지를 좋아하면서 서부극 혹은 총을 좋아하신다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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