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자를 보는데 글자는 무엇을 보나요 감상

대상작품: 글자의 시선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소윤, 19년 4월, 조회 44

글자를 읽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정확히 말하면 업으로 삼길 바라는 지망생입니다. TMI겠지만 문학계열 대학원 진학을 코앞에 둔, 그래서 뭔가 어마무시하게 바쁘긴 한데 왜 바쁜지 모르겠고 지갑은 가벼운 학생입니다. 근황을 되짚어 봐도 생각나는 건 이걸 읽었고 저걸 읽었지, 하는 글자와의 관계뿐이고 미래를 고민해봐도 저걸 읽어야 하나, 이걸 읽어야 하나하는 고민이고 30년 후의 나를 상상해봐도 그때 난 무엇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하고 묻게 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자의 시선’이라는 제목에 끌렸나봅니다.

읽는다는 것은 시선이고 텍스트를 읽는 시선은 그대로 세상에 대한 시선이 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지만 저는 맨눈으로 세상을 보면 뭐가 너무 많고 복잡하고 어려운데 분명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라서, 능력있는 작가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세상을 담아낸 텍스트에 찬찬히 침잠하며 유의미한 것을 읽어내는 과정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로 느껴집니다. 제겐 언제나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유의미한 시선을 가지기 위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내 시선이 아니라 ‘글자의 시선’이 된다면 무엇이 될까요. 나는 글자를 통해 세상에 대한 내 시선을 발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자에게 시선이 있다면 내게 얻고 있는 시선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어찌되었건 텍스트는 분명히 흰 종이에 검은 잉크로 고정되어 있는 기표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사람의 시선에 온전히 들어오길 언제나 거부하고 항상 새로운 의미로 변모하며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사람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었다가 도망갔다 하지요. 그 과정이 문자 그대로(!) 표현된 게 이 이야기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읽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글자들이 자신을 쓰는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쾌한 페이스로 쓰였지만, 글을 붙들고 씨름해본 사람이라면 감각적으로 다가올 공포를 진득하게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보고 과연 나와 글자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내 시선은 무엇이고 글자의 시선은 무엇이어서 두 가지가 어느 지점에서 얽히는지 고민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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