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다리]를 어제밤에 읽기 시작했는데 말이죠, 새벽에 잠든 다음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처음 한 게 나머지 회차를 읽은 거였어요. 정말 재밌네요. 하하하, 정말이지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만날 때는 말이죠, 저는 심장이 너무 두근두근하고 읽는 중간중간 ‘와 브라보!!!!’ 속으로 물개 박수를 치게 된단 말이죠.
SF 아포칼립스 소설이에요. 전 작품 소개만 읽고 바로 프롤로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요,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 읽은 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한 절반 정도 읽고 나서 공지를 봤고요. 작품소개의 몇 줄이랑 SF 아포칼립스 이것만 알고 본 건데 그래서 더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프롤로그가 긴 편인데 읽으면서 엄청 낄낄낄 웃었던 부분입니다.
마티아스 (…) 예, 휴론은 성역할 자체가 없죠. 無性개체이니까요. 섹스요?
주연 왜 그따위 질문을 해서 애를 화나게 만들어요?
(….)
마티아스 일단 이상한 질문 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수준 떨어지니까. 농담이었다고요? 그렇게 웃기지도 않고 수준만 덜어지는 말도 농담이 될 수 있다고요? 우주에 나가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즐겁고 색다른 나들이가 아닙니다. 매 순간 죽음의 지점들을 뛰어넘는 일이죠. 이 지점을 넘기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죽음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요. 그런 곳에서 남 섹스 걱정할 위험천만한 스릴을 즐기신다면 당신이 가보시든가요!
브라이언 K본이란 미국의 유명한 만화 스토리 작가가 있어요. 한국에도 몇 종 정발이 됐는데요, 그 중에 [Y : 와이 더 라스트 맨]이란 작품 설정이, 어느날 괴 바이러스던가 원인불명의 일로 지구상의 모든 남자 / 숫컷이 죽습니다. 딱 한 명 주인공과 주인공이 키우는 숫컷 원숭이만 이유는 모르지만 안 죽었어요.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가 안 들키도록 죽도록 숨어서 도망을 다닙니다. 그림작가 그림이 제 취향이 아니라서 보다 말았지만, 설정 자체나 앞 부분은 재밌었어요. 그리고 은근 맘도 편하더라고요. 남자가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뭔 고생을 해도, ‘이 참에 고생 좀 해봐’ 같은 남의 집 구경하는 느낌의 편안함? 여주가 무인도나 어딘가에 혼자 생존한 상황을 볼 때의 조마조마함과 불편함을 전혀 못 느낀 거예요. 그래서 작품 자체보다는 성 반전으로 이렇게 제가 편안하게 읽는다는 점에 놀랐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천선란 작가님의 [무너진 다리]는 저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더라고요. 읽기가 편합니다. 가끔 문장이 길어지면서 엉킨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재밌고 또한 아주 좋은 타이밍에 그 화를 끊어줍니다.
(…) 미리 말하건대, 내가 녹음하는 것들은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없다. 나는 전달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거지만 그뿐이다.
‘전달자’의 역할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멸망한 세계에서 구술 문학을 채록하는 기록자 같기도 하단 말이죠. 또 달리 보면 심리상담소의 상담가 같기도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한다는 점에서요. 동시에 전달자라고 말하는, 자신의 빈 기억과 두통도 해결해야 하고요. 다양한 역할을 겸하고 있는데, 이런 점이 [무너진 다리]를 애틋하게, 또는 명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다들 묻어버린 기억이 있는데 아직 (독자 앞에서) 다 복원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소설의 느낌도 많이 묻어 납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아주 궁금하고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