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배달부 키키> 초반부에 나오는, 키키 엄마의 온실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생각했건만 전혀 아니었네요. 하지만 절대로 밀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주인공 ‘나’가 만나는 인물은 크게 보아 ‘학생들’과 ‘꽃집 주인’으로 나눌 수 있겠네요. 이들은 정반대되는 성격의 캐릭터들입니다. ‘학생들’이 대상에 대한 기존의 이해(꽃집 주인은 미친 사람이다/드라이플라워는 예쁘다)를 그대로 답습하는 반면 ‘꽃집 주인’은 마주하는 대상과 직접 소통하고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나누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나’의 변화가 아닐까 싶네요. ‘나’는 원래 식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결말에서 드라이플라워의 비명(으로 추정되는 소리)을 듣게 되며 ‘꽃집 주인’에 가까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건 꽤 드라마틱한 변화입니다. 아름다움이라는 표면 아래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통받는 존재들. 그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를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말해 ‘나’라는 캐릭터가 겪는 세계의 확장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평범하게 찾아옵니다. ‘문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정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주인공은 식물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물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꽃집 주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으며, 이를 미친 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이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끊임없이 반추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변화’란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 노력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찾아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오직 무언가를 곱씹고, 자주 생각하고, 평범하게 떠올릴 준비가 되었을 때 마법처럼 스며드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