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문서: SCP-인지-기억-공간 비평

대상작품: 격리문서 : SCP-XXXX-7 (작가: 칭칭,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7시간 전, 조회 23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저는 자신 있게 대답할 겁니다.

SCP 격리개체를 격리하고 관리하기 위한 이성과 합리의 도전

이라고요.

격리픽션의 대표 주자인 SCP에 기반한 격리픽션 장편 연재 소설입니다. 줄거리는 사실 위의 요약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격리개체라는 표현을 SCP-XXXX라고 구체화시키고, 주체를 ‘정석기, 박박사, 사오리, 철수’라는 인물로 지정하면 되거든요.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27화까지의 내용, 그리고 앞으로 완결까지 벌어질 내용도 결국 SCP-XXXX를 온전하게(이 표현에 대한 부정확함은 차치하더라도) 격리/관리하기 위한 네 명의 분투입니다. 그게 시작이고, 그게 전부입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보면 ‘온전한 격리/관리 성공’이란 결과는 곧 소설의 완결을 의미할 것입니다.(물론 실제 소설의 완결을 어떻게 구상했느냐와는 무관한 얘기입니다) 나루토가 호카게가 되겠다고 하고 진짜 이장 선거에서 과반수로 뽑히는 게 다음 장면이면 곤란하니까요. 그런즉 이러한 목표는 최대한 ‘그럴싸하게’ 지연돼야 합니다.

목표에 대한 지연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는 ‘기만’과 ‘미진’이 있습니다. 기만은 가짜 성공을 먼저 제시하고 반전을 통해 목표가 성취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식이고(마왕을 잡았더니 숨겨진 흑막이!), 미진은 목표에 한 발짝 가까워졌지만 온전한 성취가 아니기에 더 나아가야 하는 식입니다.(사천왕을 잡았으니 마왕의 위세는 위축되겠지만 마왕을 잡은 건 아닌 것처럼)

그리고 본 작품은 ‘미진’을 정말 치열하고 깊게 파고든 쪽입니다. 격리픽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접한다면 전개 속도와 비슷하게 반복되는 서술들에 지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본 작품은 아주 집요한 열정을 보입니다. 이는 본 작품의 내용적 특징인 ‘인지-기억-공간’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서술 방향과도 맞아 떨어지고, 이성과 합리, 그리고 관료제의 화신인 SCP재단이라는 배경 설정의 무게감과도 맞아 떨어지고, SCP-XXXX라는 초자연적 격리개체를 대상으로 인간의 지혜를 짜내야 하는 4명의 인물들과도 맞아 떨어집니다.

즉, 본 작품은 전개 자체가 ‘미지의 공간 속에서 원하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매우 조심스럽게 내딛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건 절차로 존재하고, 절차의 끝은 보고서이며, 그렇게 합당한 결과를 추구하는 것. 강철과도 같은 의지가 이성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존재(그리고 현상) 앞에 어떻게 굴복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이 곧 적극적인 도전-저항을 나타내지 않으며, 어떤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격리개체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관찰하고, 관찰된 데이터를 검토하고,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하고, 실험 결과와 가설을 대조하고, 결과에 맞춰 격리 절차를 보완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원형 반복이 아닌 나선형 반복으로, 구체적으로 따지면 점점 더 깊게 파고 드는 나선회랑을 내려가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온전한 격리/관리는 불가능한 목표가 되어가고, 벗어날 수 없는 관료적인 절차는 딜레마가 되었으며, 이성과 합리는 불가능한 목표와 딜레마 앞에 그 한계를 드러내고, 팀원 중 일부는 점점 격리객체에 잠식되어가기까지 합니다. 손실 없는 전진은 없고, 번뜩이는 기치가 잠깐 빛을 발할지라도, 그 반짝임이 비춘 건 더 큰 대가와 위험입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감수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위험하면 멈춰야 하는 딜레마가 지배합니다.

반복되는 서술, 끊임없이 점검하는 서술, 의미를 재확인하는 서술, 0.3초, 3초, 5초의 짧은 간격들, 건조하다 못해 규격화된 양식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문체, 어쩌면 SCP재단을 빼다박은 문체이지만, 이성과 합리를 한커풀씩 벗겨내다보면 어느 순간 이성과 합리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남는 건 ‘믿음’ 뿐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자연스럽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이성과 합리가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 전제가 흔들리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 인지할 수 없는 것들이 바뀐다면, 변형된다면, 대체된다면, 우리가 믿어온 이성과 합리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믿어온 ‘이성과 합리의 작동’이란 건 어쩌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우리의 믿음이 암묵적 합의 하에 투사된 것은 아닐까요?

이 도전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모든 부작용을 떨쳐내며 ‘만세! 성공했다! 끝!’ 같은 해피엔딩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울트라대역전승리극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목표로 하는 성공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대가로 지불했느냐가 중요할 따름이죠.

그리고 저는 그 과정을 불안과 기대(이것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속에서 즐거이 지켜볼 겁니다. 아, ‘즐거이’라는 표현은 제가 기꺼이 그러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결과가 감정을 결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감정을 명명해서 구체화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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