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맨 처음부터 지말례 할머니는 수상하게 행동하고, 계속해서 수상하게 행동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둘째 아들 같다며 친근하게 굴었을 할머니는 머뭇거리고, 몸을 빼고, 손을 뿌리칩니다. 자기 온몸에, 심지어 입에까지 에프킬라를 뿌리고, 생갈치를 먹고, 고양이 시체를 주는 등 수상쩍게 행동합니다.
점점 진행되어가면서 할머니가 사실은 돌아가셨다는 암시는 강해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귀신이 자신을 묻어주겠다고 말한 주인공 ‘야채’에게 자신을 묻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온 것도 알 수 있죠. 그마저도 할머니는 혹시나 그게 폐가 될까봐 제대로 말도 못하고, 망설입니다. ‘야채’에게 비위가 강하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직접적으로 말도 못 하시고 말이죠.
별나고 지독해서 마을 사람들이 되도록 멀리 하는 할머니.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지만 혐오감을 주거나 일상생활에 불편을 일으키는 곤충, 생활방해라는 뜻의 “뉴슨스”. 할머니의 위치입니다. 존엄해야 할 인간이라 말하지만, 별로 존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은 정말이지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의 공포심을 자극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죽음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비참하고 두렵게 생각했던 것이란 홀로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그 중에서도 특히 노인들)이 홀로 죽어가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죠. 어찌보면 인류가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맞이한 가장 심각한위기일지도 모릅니다. 근처에 홀로 죽어간 사람이 없다면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홀로 죽는다는 그 공포감을 안다면, 그 처절함과 절박함과 머뭇거림에 공감하겠죠.
온갖 비극적이고 잔혹한 죽음보다. 온갖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귀신보다, 그저 단순한 죽음 하나가 정말로 서럽고 등골시리도록 무섭게, 그리고 정말로 무겁게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