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저는 루프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읽은 것들 중에는 인상 깊은 것들이 많았죠. 결말이 좋든 싫든 닫힌 시간에서 끊임없이 헤매면서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기억에 깊게 남아있습니다.
루프물은 특정 시간대와 특정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 합니다. 원하는 결말을 위해 끊임없이 루프하면서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거나, 거꾸로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말해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주의 허무함과 그럼에도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죠. 그도 아니면 시간에 갇혔다는 그 자체만으로 인간성이 무너지는 공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루프물을 읽으면서 하나의 생각이 조금씩 커져갔습니다.
그렇다면 루프 후에 남겨진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반장은 왈츠를 추듯이>는 바로 루프 후에 남겨진 세계를 보여주는 엽편입니다. 화자는 ‘루퍼’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루퍼’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중학교 시절에 반장이 루퍼이었고 우연히 ‘루퍼’가 된 직후에 잠시 대화를 나눴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데면데면한 관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야기는 반장과 화자의 짧은 대화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일담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화자가 담담한 어조로 반장을 추억합니다.
물론 ‘루퍼’니까 정말로 죽은 건 아닙니다. 주인공이 말하듯이 이 세계에서는 죽었겠지만 다른 세계에서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삶을 살아갈 겁니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루프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이 부분이요.
“무서울게 뭐 있어. 이제 시험 망치면 죽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농담이야. 그런 걸로 죽긴 싫어.”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러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일이 심하게 틀어지면 죽어서 돌아가는 주인공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그건 당연했습니다.
죽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루퍼’를 활용해서 재난을 피하거나 더 나은 삶을 만든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루프를 해도 뒤에 남는 게 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쉽게 죽을 수 없었던 겁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이 싫어하고,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게 자신이 루프를 한 뒤에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지간하면 죽어서 되돌아 갈 거 같지 않습니다. 정말 자기가 살았던 그 삶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죽음 뒤에 놓여있을 뿐이니까요.
왈츠는 독일어 Waltzen에서 왔다고 합니다. 뜻은 ‘구르다’ , ‘돌다’고요. 그 뜻처럼 왈츠는 도는 모션이 많은 춤이지만 그렇다고 제자리에서 도는 춤은 아닙니다. 정확한 원을 그리지도 않고요. 돌지만 끊임없이 도는 위치가 변하고 원의 궤도도 변합니다. ‘루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없이 비슷하지만 다른 위치와 궤도에서 또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나와 지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동시에 결국 이 세계의 나와는 죽음과 같은 단절이 있고 그렇기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과 아련함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워낙 소재가 취향이었고 15매 정도로 짧다보니 리뷰를 적으면서 한 10번은 다시 읽은 거 같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