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차별금지법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태로, 19년 2월, 조회 76

주인공은 누구의 장례식에도 가본 적 없다. 주변인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 그가 동시에 두 명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누구의 죽음에 먼저 눈을 감아야 하는 지 알 수 없다.’

그 두 죽음은 모두 주인공에게 대응 곤란의 사건이다. 주인공은 둘 중에 누구의 죽음부터 애도해야할지가 아니라 내가 이걸 애도해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나는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지만 자신과 같은 소수자성 안에서 핍박받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면 우리는 주인공이 결국 누구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는지 알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새 아내와의 전화를 짧게 마친 뒤, S를 강간한 S의 아버지를 불러내어 죽인다. 그렇다. 결국 그가 먼저, 혹은 유일하게(이 부분은 나의 추측이지만) 애도하기로 선택한 것은 S인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앞서 언급한 문장(누구의~알 수 없다)이 다시금 변주되어 등장하긴 하지만, 이미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결단을 지은 셈이다. S의 죽음 앞에 먼저 눈을 감기로.

이렇게 정리해보면 <차별금지법>은 참 쉽고 깔끔한 소설이다. 다만 한가지 질문이 고개를 든다. 왜 ‘차별금지법’인가? 제목이 그러하다면 이 소설에는 당연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운동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혹은 그 반대 세력과의 갈등 같은 것들이 그려져야했음이 마땅하다. 이 질문에 나 스스로 대답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때로는 강하게(strictly)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판타스틱 우먼>(이 또한 트랜스 여성의 삶을 다룬 퀴어영화이다)의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표현 방식(살인, 강간등을 소재로 사용하는)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의 제목이 ‘차별금지법’인 이유는 이 소설이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즉 이 소설은 일종의 경고문이다. 공권력이 앞장서서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막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입을 틀어막힌 성소수자들의 대변인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의 가치가 발생한다. 이 소설은 성소수자들이 읽기에 참 좋은 소설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표하는 경고문의 성질처럼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널리 읽혀야 할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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