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밤, 오랫만에 시간이 나서 키보드에 손을 댄 시간이 11시 45분.
자정이 다 된 시간이지만 브릿G의 중단편을 하루에 한두편은 읽어야 숙면을 하는 제 수면 습관 상 마우스를 끄적거리다 발견한 그린레보님의 ‘책과 친구의 계절’ 은 최근 훌륭한 글이 많이 올라오는 브릿G에서도 손 꼽을 만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감히 평을 남겨 봅니다.
작가님께서는 글의 특징으로 ‘매니악’함을 꼽으셨습니다.
매니악함에 대한 사전적 의미가 물론 있습니다만 최근에 어떤 컨텐츠에서 ‘매니악하다’ 라고 하면 보통 주류를 벗어난 장르나 작풍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매니아’ 를 다룬 이야기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상당한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지에 가서 생존 체험을 하거나 물리학 이론을 제대로 연구하기란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유투브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서 전문가들의 경험과 노력을 대리체험하는 것은 놀라운 쾌감을 주기도 하지 않습니까?
이 글의 주인공은 ‘책 매니아’ 입니다.
서두에 주인공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놓으면서 자신이 인간 관계라는 측면에서 실패자이며 현재는 그저 책에 파묻혀 사는 외톨이가 되었음을 분석하듯 술회하는 도입부는 일본 작가들의 작풍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최근에 읽어 본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에 이런 스타일이 자주 등장하더라구요.
도입부가 약간 길다는 느낌이 있지만 주인공에게 충분히 몰입한 상태로 이어질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수현과의 만남을 풀어나가는 부분부터 글을 시작해도 전개에 무리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의 특성 상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다소 생략되는 경우 인물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서두에 등장인물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본 사건에 뛰어들 수 있게 해 주신 작가님의 세심한 배려가 참 좋았습니다.
이 글은 클래식한 미스테리나 스릴러의 방식을 따르는 글은 아닙니다.
보통 미스테리는 서두에 이야기의 뼈대가 될 어떤 화두를 던져 두고 글을 전개하는데 이 글은 종반까지 작가님이 글에 묻어 두신 질문을 알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거든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매니악한 일본 작가들의 희귀본에 대한 이야기가 중반 이야기를 채우고 있는데 나름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고 자평하는 저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이었지만, 그것이 이야기를 ‘매니악’ 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보는데 일본 소설을 모르던 독자분들이 일본 소설과 작가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될 정도로 작가님의 식견과 애정이 과하지 않게 글에 드러나 있다고 보였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에는 작가님이 꼼꼼하게 준비해 놓으신 반전과 달라진 게 없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주인공의 뼈를 깎는(?) 자아성찰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 또한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고민에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는데요,
인간 관계의 단절은 내 능력 또는 노력의 부족함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죠.
이 글의 결말에서는 주인공에게 최악의 답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주인공이 이 사건을 겪은 후 많이 성장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저 같은 소소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매니아’ 의 이야기에는 글 읽는 재미란 이런 거야라고 작가님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듯한 묘미가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윗 문장에 기술한 대로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한 ‘좋은 글’ 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생겼으니, 바로 글을 읽기 전 장르를 확인하고 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제목을 보고 바로 들어와서 장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읽기 시작했지만, ‘추리, 스릴러’ 라는 장르를 확인하고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다면 초중반에 약간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미스테리 장르는 서두에 어느 정도는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며 읽어야 하는 지 수수께끼를 드러내고 글이 진행되어야 후반까지 중심을 잡고 몰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소설은 사실 아주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읽을 수 있는 글인데 머리 속에 추리, 스릴러로 장르가 고정되다 보니 다양한 재미를 가질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고 막판에 나올 반전만을 기대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남기는 작은 바램입니다.
물론 장르적으로도 괜찮은 글이긴 합니다만, 저는 독자분들께서 어떤 장르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읽는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이 글을 ‘매니악’ 하다고 표현하셨지만 저는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매니아’의 이야기라 표현하고 싶네요.
저 또한 소소한 매니아로서 이런 ‘매니악’한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이며 앞으로 작가님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