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의 시작과 끝 감상

대상작품: 살아남은 소년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주디, 19년 1월, 조회 48

집에 있다보면 끊임없이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귀를 찌른다. 매번 퉁탕퉁당 망치질과 톱질로 분주하게 원을 리모델링하며 누구나 보기 좋게 가꾸어 놓는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나 아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왔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아이들을 데려간다. 아이를 데려온 부모에게 인사를 활기하게 차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방긋방긋 웃으며 부모와 떨어지는 아이도 있겠지만 어느 아이는 가지 않겠다며 운다. 가까스로 품에서 내려 놓고서 돌아서는 어른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맞겼을 때는 아이가 잘 먹고, 또래 아이들과 적응을 잘 하며, 선생님 말씀을 잘 듣기를 바랬으나 몇몇 어린이집에서의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잔혹한 일상을 마주하게 된다.

 

TV를 틀었다 하면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아이의 학대 역시 변주되고, 변주 되었을 뿐 나아지지 않는다. 염소자리님의 <살아남은 소년> 역시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아동학대와 살인을 주제로 형사 강한식, 대학교 조교인 조수정, 문창과 학부생인 유정혁의 시선으로 시간차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린이집에서 누군가 아이에게 황산을 부어 아이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 신고를 받은 형사 한식이 그곳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어린이집과 문단의 권력인 황교수, 조교 조수정의 이야기가 매칠이 잘 되지 않았으나 이내 정혁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어울러지면서 이야기는 더 다채롭게 읽힌다.

 

어린시절 그는 갑작스럽게 엄마가 죽으면서 동생 정민과 오도갈 수 없는 상황에 맞물린다. 아버지는 멀리 일하러 가야했고, 할머니는 다리가 좋지 않아 두 아이를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소문해 두 아이를 맡아준다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아버지는 떠난다. 곁에 있으면서 엄마가 하는 일들을 다 할 수 있다는 여섯 살의 아이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어린 동생과 함께 인상 좋은 어린이집 원장의 손에 맡겨졌다.

 

부모가 온전하게 있는 아이들과 부모에게는 상냥한 미소로 친절하게 대했지만 부모의 관심이 떨어져 있는 정혁과 정민에게는 첫날부터 그곳이 감옥이 되었다. 구청에서 지원금과 형제의 아버지에게서 받는 원비에도 그들은 그들을 자신들에게 얹혀 사는 아이들로 취급했다. 가끔씩 들여다보는 아버지 조차도 형제의 그런 생활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도 차마 데려갈 수 없는 처지에 눈을 감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원장 남편의 폭력과 욕설이 터져나온다. 아이는 이제 조용히 지내려고 했으나 형인 자신과 달리 동생 정민은 아이들과 어울리며 재롱을 부리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것이 발단이 되었을까. 원장부부의 불화와 어디서 툭 떨어진 것처럼 원장 남편의 실수로 생긴 아이가 자신들의 곁에 오면서 이야기는 더 잔인하게 몰아친다.

 

“이제 바로 현대사회의 인심이죠. 누군가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무심히 듣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겠지만 말이죠. 이 아파트 단지가 작긴 해도 이백여 세대가 살아요. 방관자 효과 아시죠?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나서겠지, 그런 거죠. 씁쓸한 현실이죠. 이 거대하고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작 글 따위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의 중심은 형제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권력과 힘을 과시하고 잘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단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는 시간차로 우려내며 그려내고 있다. 20회에 걸쳐 830매에 이르는 긴 호흡의 이야기인데도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가 적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개인의 일이기 앞서 사회에서 철저하게 감시해 주어야 할 대상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큰 파국으로 맞이한 결과였다. 막장에서의 시작과 끝을 너무나 명확하고도 시원하게 끝낸 이야기가 때로 판타지 처럼 느껴졌지만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이 글에서는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작품이었다. 그 어떤 결말보다 더 좋았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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