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자주 말해대서, 이 이야기를 또 꺼내면 작가님이 이 자가 나랑 싸우자는 건가? 싶어지실 것 같다. 나는 이분의 작품 세계가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이건 피장파장이라 뭐라 더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일 아닌가?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도 오, 이거 내 취향적으로 재미있어!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단 말이다. 그럼 그 때 전하는 감상은 얼마나 각별하게 느껴지실 것인가?
감상 받고 조금이나마 신나하시라고 이 감상을 드린다.
…아, 그런데,
나는 리뷰를 쓸 때마다 인연을 하나씩 잃잖아…?
리뷰 하나 쓸 때마다 자꾸 작가님들 가슴 속에 스크래치를 하나씩 내는 것 같은데, 고의가 아니다. 마음에 드는 만큼 아쉬운 점을 토로해서 그렇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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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야기
그리하여 총평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차를 좋아하는 의문의 장년인이, 의문의 귀공자와 짝을 이뤄 살인미수 사건을 해결하고 사람 하나 구해내는 이야기. 거기에 비밀도 있고, 후일담도 예고한다. (개인적으로 엔딩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이 어찌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장면은 유려하고, 이미지가 풍부하다. 등장인물은 개성이 확실하며, 무협으로도 추리로도 괜찮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교주 이름이 등장했을 때 아니이이- 댁 왜 또 나와 하면서 좀 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깔끔함이 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2. 거기 아저씨, 차 이야기 하지 맙시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읽을 걸 염두에 두신다면, 차 부분은 좀 손 좀, 아니 손 꽤나 보셔야 할 것 같다.
“(전략) 사천의 차가 최고라 들었소.”
아닌데! 사천은 차나무의 잎이 훌륭히 자라기 좋은 기후가 아니라서 근처라면 운남의 차를 더 높이 치는데? 사천의 차라면 몽정이나 죽엽청(술 아니다)일테고, 그걸 명차로 취급하진 않는데? 사천에서 그나마 좀 이름이 괜찮다 싶은 건 모리화차(자스민)인데, 진정 차를 마시는 사람은 차나무에서 난 “그” 차가 아니라면 유사차로 취급하지 차로 치지 않는단 말이다?
당신, 다예에 취향 없지?
그런데 이 아저씨, 또 내게 불을 지른다.
“기회가 된다면 저희 가문의 명차를 대접해드리고 싶군요.”
사내가 눈을 빛내며 당인봉을 쳐다보았다. 사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개완차(蓋椀茶)를 말씀하시는 건 아닌지?”
이보시오, 장년인-! 개완차의 개완은 다구의 종류이며 차를 마시는 방법일 뿐이지 차의 종류나 이름이 아닌뎁쇼!
당신, 정말 다예에 취향 없지?!!??!?!
그 다음 등장한 사람도 다예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닌 것이 확실하여 나의 위장엔 불이 붙고야 말았다. 아니 명차랑 컵 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그게 삼재완이든 삼재배든 무슨 상관이냐고…… 마시는 방법은 또 무슨 상관이냐고…
이것은 마치 와규를 대접하겠다며 “저희 집에 훌륭한 고베우시(神戸牛こうべうし, 쿠로게와슈黒毛和種의 한 종류로 고베규라는 호칭이 더 유명)가 있는데…!” 하는 사람에게 “아니? 와규라면 역시 롯지에 구워야지! 롯지 몰라, 롯지? 롯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고기 맛을 알아?” 하며 그릇 이름만 외치는 그런 느낌의…!
이후 몇몇 차 종류가 나올 때마다 나 이거 알아! 하듯 신나게 자기 지식 자랑만 하고 있지만, 당신 차 종류만 알고 다예는 정말 제대로 모른다. 찻잎을 무슨 담배쌈지 꺼내듯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는 걸 보고도 눈 안 뒤집고 명차를 본다며 그냥 좋아하고 있다. (나는, 나는 향 변하고 맛도 변한다며 뒷목을 잡았다!) 내게 딱 찍혔어.
분명히 많은 조사를 하신 것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가 나올 때마다 모니터에서 얼굴이 10cm는 더 멀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차와 술은 디저트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는 이미 한 적 있으니 넘기도록 하고…
그래도 역시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다. 이렇게나 초반부터 내게 격하게 불을 질러놓고, 이 글은 그 뒤의 부분도 술술 읽혔으니. 뭐 하나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절대로 그 뒤를 보지 못하는 성격의 내게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혹시 손보실 거라면, 거 스포 인물 연배도 늘려주십시오.
저렇게 당당히 오라버니 어쩌고를 할 수 있을 인물이라면, 얼굴만 젊고 실제로는 중년인인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절세고수이며 한 교의 교주라고 해도! 외견과 같은 나이라면 절대로, 절대로 오라버니 호칭은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썸씽이 있건 어쨌건!
심지어 먼저 오라버니라고 부른다고 했겠다? 무협물에서 오라버니란, 사형이거나(사형에게도 잘 쓰지 않던데) 진짜로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쓸 수 있을 만한 친족들이거나 기타 등등의…!
정체 정도가 아니라, 성별을 숨기거나 나이를 숨기는 정도가 되어야 가능할 일이 아닐까. 주변에 나이를 숨기고 유유자적히 돌아다닐 만한 인물이면, 당연히 오라버니도 잘 쓸 것이다. 그녀에게 그 호칭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젊은 교주인 것이 확실하여 나는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작가님 글의 젊은 여자는 종종, 조심성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 **(스포) 신선해!
무협 배경에서 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독극물이 나와서 오, 괜찮은데? 했다는 점을 안 쓰고 넘어갈 뻔했다. 오호라. 그래서 XX교 인물이 필요했던 거로군!
5. 시리즈로 이어지면 좋을 것 같은데
유유자적 여행을 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장선생님!
분명 훌륭한 시리즈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장선생님, 선생님은 차를 좀 더 배우십시오. 아니면 그냥 말하지 말고 조용히 마셔 줘!!!
덤. 이왕 차 이야기 한 거 한 가지만 더.
철관음은 생각보다 검지 않으니, 운남 보이차에 섞는 쪽을 추천한다. 기름 분해 효과는 물론이고 산차건 병차건 색이 꽤 짙으며, 물에 우린 색도 검붉다. 오래 발효시켜 먹기 때문에 특유의 곰팡이 비슷한 내음도 있으니, 뭘 섞으려면 아주 그만일 것이다. 게다가 당대엔 소수민족만 마시던 차였으므로 진정 차를 아는 이라면 충분히 구해 마시고도 남았을 차일 것 같고.
묘사되진 않았지만 오독교의 이미지는 딱 소수민족의 이미지인데, 그렇다면 장문인이 초초를 쉽게 인정한 것도 빠르게 수긍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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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리뷰 한 번 화룡점정… 게다가 또 사커 모드…(…) 그러나 이 공격적 기세와는 다르게 언제나 응원하고 있음을 열심히 피력해본다. 진짜다.
그럼 마지막으로, 자, 작가님, 제가 또 리뷰할 수 있게(?!) 괜찮은 무협물 더 써주십시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