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에드문트 강에게 빠졌나 감상 브릿G 추천

대상작품: 교수 탐정; 사건 6 – 양자 살인 (작가: 견월, 작품정보)
리뷰어: 파란펜, 1월 18일, 조회 56

*이 리뷰는 <교수탐정> 시리즈의 작풍을 일부 모방해 쓴 것임을 밝힙니다.

 

인간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독서 외에도 무척이나 많다. 유튜브 연속재생, 인스타 탐험, 블로그 포스팅, 카카오톡 채팅, 웹툰 정주행, 스카이캐슬 보기 등등. 소설을 읽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과 안구건조증 없는 촉촉한 눈, 명석한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고강도 노동이다. 물론 문자를 알아야 한다는 전제조건 역시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굳이 소설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보다 큰 재미와 감동을 주는 다른 매체는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슬픔이나 공포, 위로를 갈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재미, 감동, 슬픔, 공포, 위로뿐만 아니라 오만 가지 것들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나는 탐욕적인 독서가다.

 

내 이름은 이창언, 영어명 블루펜, ??세, 공상가이자 제8기 브릿G리뷰단의 일원이다.

 

리뷰단을 덜컥 신청해버리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숙제에 시달리던 십 대 학창시절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주일에 최소 한 편씩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 규칙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편쯤이라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일주일 동안 업데이트되는 중단편의 양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중단편 작품의 리뷰를 주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개인적으로 단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었다. 단편소설만 쓴 앨리스 먼로나 레이먼드 카버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과 단편 중 단편을 훨씬 더 좋아했다. 장편은 압축적으로 쓰기 힘들 뿐더러 수수께끼만 남기고 사라지는 수작(?)을 부릴 수 없는 정직한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수수께끼에 환장하는 인간이다.

 

어느 날 중단편 섹션에서 헤엄을 치던 중 문제의 <교수탐정 시리즈>를 발견했다. 1편의 부제는 <불신의 공간>. 나는 읽기도 전부터 불신을 장착하고 작품에 몰입했다.

주인공은 55세의 강창석. 영어명은 에드문트 강. 범죄심리학교수이자 서울경찰청과학수사대 자문위원이다. 어느 날 강창석에게 옛 제자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고, 그는 제자가 근무했던 곳을 찾아가 동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강창석에게 비협조적이었으며 매우 의심스러운 언행을 보였다. 강창석은 제자의 집에 들렀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서를 발견하는데.. 나는 결말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감정을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경이로움? 아니다.

놀라움? 근사치까지 왔다.

배신감? 이거다, 바로 이거야!

나는 심한 배신감에 휩싸여 작가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이런 기묘한 종류의 배신감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부제는 <눈의 여왕>.  세 남자가 엉뚱한 곳에서 냉동사로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와 강창석의 대화를 읽던 중, 나는 말 그대로 냉동사 할 뻔했다. 배신감의 수치가 더욱 높이 올라갔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부제는 <쌍둥이의 모험>. 나는 그리 명석하지 못한 두뇌 때문에 이 작품을 두 번 반복해 읽었고 마침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한 강창석처럼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확실해. 이 작가는 일부러, 일부러 이러는 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영어명 에드문트 강, 55세의 강창석씨에게 푹 빠져있었다. 매번 이야기의 서두를 열면서 뜬금없이 심각한 말들을 주절거리는 것이나, 정색한 얼굴로 자신의 신상명세를 한 줄로 밝힌 뒤 의심스러운 사건의 도입부를 열어 가는 능력, 자신의 직감을 믿고 진지하게 수사에 임하는 자세, 드디어 밝혀지는 결말의 뻔뻔함!

무엇보다 내가 가장 끌렸던 것은 강창석아저씨의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였다.

 

분명 처음엔 심각해 보이는 사건이었다. 도대체 어떤 트릭을 쓴 것일까? 강창석씨 역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투한다. 그러다 드러난 진실은 강창석씨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강창석씨는 절대로 실망하지 않는다. 어찌나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내보이는지 가끔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최근작 <교수탐정; 사건 6- 양자살인>은 배신감의 지수는 극히 낮다. 그러나 장르적 재미를 주는 완성도는 가장 높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실제로 구현하려 했던 물리학자와의 두뇌 싸움이라니! 마침 유튜브에서 양자역학과 중첩의 개념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 난 직후였기에 나의 머릿속에선 모든 장면이 영상으로 펼쳐졌다. 음, 아, 그렇군, 아, 그렇지, 그렇고말고, 그랬다니! 나는 감탄과 몰입을 반복하면서 양자역학을 짧고 완성도 높은 단편으로 구현해 낸 작가에 대한 신뢰도를 가장 높은 수치로 올려놓았다.

 

아, 이 리뷰의 도입부에 <교수탐정> 시리즈의 작풍을 모방하겠다고 밝혔으나 쓰다 보니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결정적으로 나는 견월 작가님처럼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능력이 태부족하다. 그래서 이 리뷰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징징거림에 가까운 부탁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고된 하루를 보낸 뒤 브릿지앱을 열고 강창석씨의 엉뚱하고, 담담하고, 기름기 하나 없는 건조한 행보를 읽고 나면, 아 이 세상이 나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기긴 해도 나는 강창석, 영어명 에드문트 강처럼 한없이 초연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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