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습니다. 아무튼 재밌으면 그만이니까요.
영생은 누구라도 선뜻 흔들릴만한 유혹적인 제안입니다. SF 불모지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소재로 나온 영화가 있을 정도로 (또 나름대로 알려졌을 정도로) 장르에 익숙지 않은 수용자에게도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소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뇌종양 수술을 앞둔 투자회사의 회장 양석은 거액의 투자 계약에 주저없이 서명하는 사내를 만나 지난 15년 간 있었던 자신의 투자 실패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여기에 분노할 겨를도 없이 사내는 양석에게 뇌종양을 없애 주겠다는 유혹적인 제안을 합니다.
저는 사실 공간이동을 하면서 아예 15년 전의 몸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아무런 준비 없이 그렇게 했다가는 기업의 회장으로서 엄청난 의심을 샀겠지만 어째 설명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서 휙휙 지나가는 통에 두 번 읽고서야 양석의 뇌에서 종양만 제거했다는 점이 눈에 띄더라구요. 그럴 바에야 종양만 슝 하고 공간이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작품 안에서 합의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일관적으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대단한 투자가라고는 하지만 10년 치 투자 계획이 구체적인 부분까지 미리 머릿속에 들어 있다는 부분도 극의 전개를 위해서 필수적인 배경 설정인 탓에 크게 방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백미는 여러 몸에 의식을 옮긴 사내가 정체를 드러내는 마지막 부분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내의 이런 익명성 때문에 이 인물에게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물론 극중에 적혀 있는데 제가 못 보고 지나쳤을 수는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쉬운 점들을 순식간에 뒤엎는 인상적인 마무리였습니다. 분량을 더 늘려서라도 양석의 심리 변화나 양석을 설득하는 사내의 논리가 조금 더 치밀하게 짜여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술되는 기간도 더 길게 잡구요.
혹여 작가님이 불쾌하게 읽으시지는 않을까 걱정되네요. 추천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