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성옥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백미러가 없다 (don’t look back) (작가: 제로위크, 작품정보)
리뷰어: 파란펜, 19년 1월, 조회 66

저는 학창시절에 CD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땐 음악파일이라는 것이 무언지도 몰랐고, 콤팩트한 크기의 CD를 수십 장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미래의 발전된 오디오일 것이라 생각했었죠. 애니메이션 <아키라>에 나오는 주크박스처럼요.

음반가게로 달려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CD를 구입해 CD플레이어에 넣고 재생을 기다리면, 두근거리는 마음 위로 인트로 음악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땐 지금처럼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한 장의 CD는 흡사 한 권의 책과 비슷했고, 인트로 음악은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소설의 프롤로그와 비슷한 역할이었죠.

 

<백미러가 없다>의 프롤로그는 CD에 비유하자면 훌륭한 인트로였습니다.

뜻을 알 듯 말 듯한 짧은 문장이 시의 운율처럼 리듬을 갖고 장중하게 흐릅니다. 그러나 레퀴엠의 느낌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다가 자주 듣곤 했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바이올린의 높은 음 소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스릴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죠.

 

이 작품의 태그엔 심리스릴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막연하게 미스터리는 언제나 스릴러를 동반하지 않나, 하는 생각만 했었죠.

<웹소설작가를 위한 장르가이드3 미스터리>에선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차이를 사건이 먼저 발생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구별합니다. 미스터리는 사건이 먼저 발생한 뒤 진실을 파헤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스릴러는 대개 사건의 진행 속도와 주인공이 움직이는 속도가 비슷합니다. 한마디로 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인물이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죠. 이런 기준에 의하면, <백미러가 없다>는 확실히 스릴러에 속합니다. 사건이 이미 발생한 듯 보이지만 인물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가는 플롯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사건은 한 줄로 짧게 요약이 가능합니다.

‘사라진 딸을 되찾기 위한 엄마의 악전고투.’

영화 <테이큰>처럼, 부성애 못지않은 모성애로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액션이 연달아 벌어진다면 이것은 ‘비질랜티물’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비질랜티물이란,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미리 알려주고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의 하위 장르입니다.)

이 소설 역시 도입부에선 그런 절차를 밟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홀로 딸을 키워온 엄마 ‘성옥’에 대한 독자인 저의 믿음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작가는 도입부에서 독자에게 작지만 명징한 신호를 보냅니다. 이런 질문과 함께요.

 

“당신은 성옥이 인지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믿을 수 있습니까?”

 

예민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성옥의 혼란스러운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의구심은 충분히 가질 만합니다. 도대체 이 주인공의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는 덫에 걸려들고 마는 겁니다. 주인공의 비밀이 무언지 알기 전까진 글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죠. 가끔은 공복도 잊을 정도로 몰두합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독자와의 두뇌게임을 위한 판을 벌여놓고 퍼즐을 늘어놓는 플롯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공복 상태에선 머리 쓰는 일은 하지 않는 법입니다.) 자꾸만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려놓고 독자에게 자극적인 긴장감을 선사하는 플롯만으로도 안 됩니다. (저는 공복 상태에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집니다. 저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즉, 매력적인 플롯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저는 미스터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외로 ‘플롯’이 아니라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공감이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요.

 

추리소설은 여러 장르소설 가운데 인간의 내밀한 욕망과 본질을 가장 깊게 파헤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인물에 대한 섬세하고 깊이 있는 가공이 필요한 것이고요.

 

<백미러가 없다>의 주인공 성옥은 이러한 저의 생각에 부합하는 인물입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인물로 느껴지기까지 하니까요. 물론 성옥의 비밀을 모두 알게 된 지금은 이런 일이 존재하는 세상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이 지구 어딘가에서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소설은 인물에 대한 작가의 고심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끔찍한 비밀을 가진 주인공 성옥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그러느라 얼마나 심신이 지쳤을지 염려가 되었을 정도이니까요.

 

저는 어두운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를 존경합니다. 그 어둠을 온전히 끌어안고 한 줄 한 줄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일만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독자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을 선사하는 결실을 낳게 되는 것이지요.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저처럼요.

존 D.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때는 추리소설에서 인물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문제를 케이크를 꾸미는 장식처럼 여겼던 적도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이제는 효과적인 인물 묘사가 핵심이고, 복잡한 플롯이 장식처럼 여겨진다. 인물 묘사는 엄청나게 힘든 작업이지만, 그만큼 커다란 보상이 따른다. 결국 추리소설이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쓰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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