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무엇인가요? 의뢰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냥꾼들 (작가: 조나단, 작품정보)
리뷰어: 한켠, 18년 11월, 조회 31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설은 작가와 독자와의 대화입니다작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습니다중세 유럽의 이야기, 1억년 후 안드로메다의 이야기조선시대어떤 소재와 배경과 인물이건 다요그걸 읽는 독자는‘21세기 한국인입니다운이 좋으면 미래의 독자나 외국인 독자가 읽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21세기의 한국인 독자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한국에서 남자 사냥꾼들이 비장애인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진짜 여자’(이 작품에서 진짜 여자라고 나옵니다.)를 찾으러 다니는’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자는 포궁(자궁)도 생식기도 아니다사람이다여자의 몸은 그 자신의 것이다를 외치는 이 시대에 말입니다작가님은 그 이유를 독자에게 납득시키셔야 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여자들이 미숙아’(작품 속에서는 지능이 낮고 공격성이 강한 돌연변이 같은 존재)를 낳게 됩니다이 미숙아들 중 일부는 일족 안에서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일족이 양육을 거부하면 외부에서 돌쟁이로 살면서 인간들을 공격합니다미숙아/돌쟁이가 아닌 진짜 인간은 일족(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부계 씨족단위로 건물을 점거하고 생존하는데권씨 일족의 우두머리 영감이 일족의 대를 잇기 위해 사냥꾼(무기를 소지하고 의뢰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남성들)에게 오래 전 돌쟁이들에게 납치된 막내딸을 구출해서 데려와 달라고 의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권씨 일족은 광화문이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데덕분에 세종문화회관이순신 장군 동상이 언급되고 그걸 이용한 소소한 드립도 치고 하는 부분에선 한국이 배경이라 흥미가 생겼는데정말로 지명만 나옵니다한국이 배경이라는 게 흥미 요인인데, ‘한국적인 공간이 지형지물로써 적재적소에 활용되었으면 합니다.한국에 있고 외국에는 별로 없는 공간또는 한국의 랜드마크가 뭐가 있을까요대형 아파트 단지예식장롯데 타워?

공간적 배경에서 생겼던 흥미는 사냥꾼들이 권씨 일족의 우두머리를 만나는 도입부에서 식어버렸습니다일족들이 부계 씨족 중심으로 구성되는 이유가 뭘까요? (후에 여성 노인이 우두머리인 일족이 나오지만 예외적인 케이스입니다.) 일족의 우두머리가 할아버지인 이유는 과거의 경험(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갖고 있어서라는데그렇다면 할머니 중심의 일족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문명이 멸망했다면서 왜 굳이 여자가 손님 대접하고 요리하나요왜 여성 사냥꾼은 없나요멸망 이후에는 야만의 상태라서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니까남성이 우위에 있다고 한다면근력의 차이는 지능과 원거리 타격 무기로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습니다아니면 설정을 덧붙이거나요픽션이잖습니까.

종말 이후의 세계는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호러일 수도 있지만 세상을 리셋하는 판타지일 수도있습니다. ‘멸망->문명이 사라진 야만의 상태->본능만 남음->그 본능이 종족보존이라서 여성만 강간납치공격성매매강제임신의 대상이 되는 세계라면 일부 남성의 전쟁 나서 강간당해도 오빠가 안 구해 줄거야(본심은전쟁 나면 강간하고 다닐 거야’)’라는 판타지에 가까워 보입니다여자가 진짜여야 진짜아기를 낳는다는 설정도 장애가 있거나 건강하지 않은 아기를 낳았을 때 산모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현실의 행태를 그대로 수용한 것처럼 보입니다문명이 없다는 게 여성에 대한 공격과 지배로 표현된다는 건법과 도덕 때문에 휘두르지 못하는 성욕과 공격욕을 혼란을 틈타 (유독 여자에게마음대로 풀겠다는 남성들의 판타지’ 아닐까요?(작가님의 의도는 그게 아닐 거라 믿습니다만, ‘일부 커뮤니티’를 본 듯 한 기시감이 듭니다…)

야만의 세계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예를 들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황에 지쳐서 사회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고요. ‘진짜 여자’ 뿐만 아니라 진짜 남자도 납치감금 되어서 씨내리로 활용될 수도 있고요법과 돈보다 주먹이 가까운 죽창 앞에선 모두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 볼 수도 있고요.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원시 사회를 이룩할 수도 있고요인류가 멸종하고 야생동물이 번성할 수도 있고요언어와 지능이 있으면 일단 완전히 야만은 아니지요문명이 사라진 혼란이 왜 굳이’ 이런 세계로 표현되어야만 하는가하는 이유가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왜 종족 보존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저출산 시대의 독자가 보기에는요번식이 생물의 본능이라지만 환경이 척박하면 짐승도 출산을 하지 않거나 새끼를 죽이기도 합니다아기를 낳아 기르기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라면출산을 거부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인간 남자나 돌쟁이 수컷이나 번식에 집착하는지요.(자기네들이 안 낳아 길러봐서 그런 걸까요인간의 임신과 출산은 굉장히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번식 성공률을 높이고 싶다면 무작정 여자를 납치하는 게 아니라 무월경이나 생리 불순이 오지 않도록 신체적 정신적 건강 관리를 해 주고->유산되지 않고 10개월 동안 임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고->출산 중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도록 산파나 의료진을 구비하고->신생아와 출산 직후 산모가 건강할 수 있게 돌봐 줄 인력이 필요하고출산 능력을 거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진짜 아기와 진짜 여자가 귀한 세계라면 이런 고민을 한번쯤 해 볼 법도 한데이 세계의 남자들은 놀랍도록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낳는다고 끝이 아닙니다인간은 양육(교육)에 엄청난 시간과 자원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동물입니다아무리 높은 지능으로 태어나도 방임해 버리면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인간입니다요즘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이유는 (농경사회에 비해아이를 제 앞가림 하는 인간으로 길러내기 위한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요아이에게 투입되는 비용보다 편익(아기의 귀여움 같은 감정적인 부분도 포함)이 커야 아이를 낳는데이 세계관에서 아이를 낳는 데 들이는 비용과 리스크와 수고가 어마어마 하다는 건 알겠는데아이를 기르고 보호하고 교육하는 고민은 별로 없고그 아이가 주는 편익도 잘 모르겠습니다일족을 유지하기 위해 후손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그래서 그 후손으로 뭐 하려는지는 모르겠습니다아기가 너무 귀엽거나부부 간의 사랑의 결실인 것도 아니고요가문은 후손에게 명예와 재산문화를 물려주기 위해 이어지는데 종말 이후에 그런 게 있을까요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문맹인 사회인데요. (글자는 기록과 전승에 요긴하죠아니면 그냥 야생동물의 무리처럼 무리의 개체수가 많을수록 방어에 유리하니까 개체수를 확보하려는 걸까요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분들은 낳아 놓으면 알아서 다 크는 줄 아는데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려면 마을 하나로도 부족합니다

종말 이후의 종족 보존이 소재라면 아예 종말 이후의 임신출산,양육(사회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진지하고 폭넓게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출산과 육아에서 남성은 뭘 어떻게 잘 해야 하는지도요.)그리고연애결혼출산의 결합은 근대 이후의 발명이기는 한데요그래도 인간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육체적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후대에 그 사람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다는 소망도 있는데여기서는 왜 사랑 있는 출산은 상상해 보지 않는 걸까요.

인간에게서 태어나서 적이자 형제자식이기도 한 돌쟁이/미숙아는 무리 지어 다니고 언어 구사 못 하는 것 같고(깩깩대긴 합니다만공격성 높아서 마치 좀비 같아 보입니다좀비물에서 가족이나 친구가 차마 죽일 수도 그렇다고 살려둘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데서 오는 감정이 있다면돌쟁이는 인간에게서 태어나는 자식이란 점에서 애착 정도가 좀비보다 훨씬 클 것 같습니다모방이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발달한 돌쟁이들이 생기고여일처럼 언어 구사가 가능하고 지능이 좀 낮은 것만 빼면 거의 인간과 비슷한 돌쟁이/미숙아들을 보면 인간 없이 돌쟁이만 있어도 언젠가는 돌쟁이들이 진화해서 새로운 질서와 문명을 만들어낼 것 같기도 합니다.(이런 면에선 영화 혹성탈출의 유인원들과도 유사하군요일족 외부로 버리지 않고 내부에서 기르면 인간과 공존 가능한 것도 좀비와의 차이점이군요좀비와 돌쟁이의 차이점좀비에 비해 돌쟁이가 주는 매력이 뭘까요?

이 작품에서 한국적 아포칼립스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인천공항을 차지한 회장 일가가 나오는 부분부터입니다뇌물정경유착혈통에 대한 집착충성스러운 심복 위주의 인력 운용 등 한국 재벌가를 연상시키는 재벌 일가의 왕국사이비 종교 집단 같기도 한 일족인데요노동요로 새마을 노래가 나오고 받아들여줄 것처럼 속이고 다리를 폭파시켜 외부인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은 이승만의 한강철교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립된 지역의 왕국에서는 형제복지원선감 학원서산 개척단 등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사실 사냥꾼 집단보다는 이 섬의 거주자들이 훨씬 주인공스러운데요사장이 너무허무하게 죽어요더 복잡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 인물인데요사장은 회장의 계승자이면서도 회장보다는 무능한 인물인데침입자가 발생하고 일련의 사건이 터졌을 때성장을 하거나 선택을 하면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마마와의 관계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마마가 회장의 아들을 낳으면 제일 먼저 밀려날 인물이 사장이라는 점에서 마마를 경계할 수도 있고섬의 남자들에 대한 보상과 미숙아와 그 어머니들을 배제하기 위해 마마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요여일과의 관계도 더 복잡할 수 있고…’재벌 2세는 아니지만 야심 있는 전문 경영인’(?)/아들이 아니라는 이유 만으로 밀려나는 딸 포지션이면서 회장 안팎의 사람들과 관계도를 촘촘하게 그릴 수 있는 인물인데사실 제가 이런 인물을 좋아해서더 보고 싶은 사심이 있습니다.

섬에 침투해서 회장여일과 교류하는 인물은 둥이인데개인적으로는 무사가 같이 들어가서 회장과 조우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무사는 회장의 책을 읽을 수 있고회장처럼 종말 이전의 시대를 기억하는 인물이며 할아버지가 회장 같은 사람이었죠무사에게 회장은 할아버지가 만약 생존했다면의 답이 될 수 있는 인물이고회장도 아들이 있었다면 무사 같았을 거라 여길 거고,둘이 유사 부자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이것도 제 사심입니다

여일은회장을 수발하다가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 미숙아 여자애인데요얘는 자기 욕망도 의견도 없습니다둥이의 조력자로만 사용됩니다회장을 돌보고둥이를 돕고여일의 인생은 어디 있죠여일이 회장을 거부할 수 있는 처지였나요얘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이해했을까요회장과 합의 하에 임신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동의 했어도 그루밍 범죄고요지능이 낮은 여자아이가 남자 노인에게 강간을 당해서 임신했는데여일의 생모이자 회장의 여자였던 마마의 입으로 생명은 좋은 징조라고 합니다현실에서 지적 장애 있는 여자 아이가 강간 당하는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소설에서도 그러면 안 됩니다독자는 현실의 시선으로 작품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권씨 일족의 막내딸이자 돌쟁이에게 납치되고 강간 피해자이자 자신의 성을 팔아가며 생존한 마마라는 인물을 작가는 주체적이고 초월적인 여성으로 그리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마마는 미숙아들과 그 어머니들을 보살피는 공동체의 리더이기도 하고요그런데악한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 선한 개인이 주체적인 인물일까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 정말로 강요 아닌 자유로운 선택일까요? 마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해도 ‘인자한 포주’에 그칩니다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매매 여성이 성구매자를 초이스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비인권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요

노예제가 있는 사회에서노예 하나가 열심히 노오력해서 자유민이 되었습니다이 노예 출신이 노예 보호소를 짓고 도망 노예들을 받아 들이는데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도망 노예에게 노예 노동을 계속 시키면서 다만 노예가 주인을 고를 수 있다고 하면이 자유민은 선량한 노예 파견업체 사장랑 뭐가 다를까요게다가 노예 해방이 노예들의 각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적의 침입에 의해 노예주들이 죽어서 이뤄진다면노예들의 의지가 아니라 노예 보호소장의 고민과 결단으로 노예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이 노예들의 앞날이 희망차 보일까요? 타인의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삶은 불안합니다.

여일도 마마도 돌보고 낳고 강간/성매매 당하는 여성입니다왜 이 작품에서 여자는 엄마 아니면 창녀일까요둥이는 마마에게허니문을 원했었다고 반성 없이 얘기합니다귀엽지 않아요무례하고위협적입니다왜 여자는 전리품’ 일까요사냥꾼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마와 여자들이 진짜 여자들이 진짜 아기를 낳는 곳으로 떠나는 게 희망의 암시일까요여자를 보상으로 보는 사냥꾼들이랑 같이 가는 게 더 위험하지 않나요일족의 막내딸을 구출하면 상으로 ‘허니문’을 달라던 사냥꾼들이 마마의 일족 여자들을 구해주면 보상으로 ‘허니문’을 원하지 않을까요? ‘보호 받는’ 여자들이 그걸 거부할 수 있을까요? ‘진짜 여자’도 ‘진짜 사람’도 아닌 여일이나 칠수, 민수는 거기서 살 수 있나요? 젊은 세대인 여일도,둥이도 과거의 정신에서 진일보하지 못 했고요책을 읽는 무사가 문명을 재건할까요책은내용이 중요하지요.

희망은 진짜 여자가 진짜 아기를 낳는 곳에 있지 않을 겁니다.여자가 아기를 낳아도 되고 안 낳아도 되는 곳진짜든 가짜든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존할 수 있는 곳에 있을 겁니다. ‘진짜 여자’를 찾지 말고 타인을 존중해요둥이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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