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냥꾼들 (작가: 조나단,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8년 11월, 조회 126

제가 처음으로 접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데이 오브 더 트리피드 (The Day of the Triffids)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꽤 어릴때, 국내에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 번역된 작은 책자였죠.

하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이 또한 찾아봤습니다. 결말이 좀 다르긴 하지만 희망적으로 끝나는 점은 같았습니다.

그후 TV에서 매드맥스 시리즈를 방영해 주었고 세월이 흐른 지금 분노의 도로도 당연히 봤습니다.

좀 특이한 SF계열의 일본 만화 원작 애니로 ‘소녀종말여행’이란 작품도 꽤 최근 감상 완료했습니다.

이 바닥에서 아는 체를 좀 하려면 2009년도 영화 ‘더 로드’도 감상해야 하겠지만 그건 나중을 위한 진정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저는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는 타입이라….

쓰고 싶은 것은 이러합니다.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혹은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장르의 가장 간절한 ‘가치’는 자신의 먹을 것을 내어줘야 할 아이가 아닌 바로 먹을 것 그 자체라는 것을요.

기근이 닥쳐서 반쯤 미쳐버린 어른들이 서로의 아이를 바꿔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는 그저 전설이나 괴담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이 장르에서도 어찌어찌 사람들을 규합하여 도시 규모의 터전을 일궈내어 식량문제를 해결 할 수도 있긴 합니다. 그 안에서라면 금붙이 같은 화폐 제도도, 그걸 받쳐줄 시장경제도 돌아갈 수 있겠죠.

하지만 외부로 나오면?

몇 몇 도시들 간의 교역이 회복되어 외부에서도 제법 금붙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헌데 작중에선 소규모 씨족들이 건물을 점거해 안에서 칩거만 한다 나오고 천사들의 거점은 다른 곳과 교역을 하지 않고 고립되어 있습니다.

한 두 해가 아닌 몇 세대 동안 한 가족도 아니고 씨족 단위가 먹고 살려면 그만한 가용 농지 면적이 필요합니다. 당장 먹을 것만이 아닌 저장분도 만들 만큼 여유로워야 아이들이 자라납니다.

옥수수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 단백질 보급원으로 닭이든, 하다못해 충식용 벌레든 뭔가 고기도 있어야 하죠. 없다면 다른 씨족들과 물물교환이라도 하던가요.

온전한 자급자족을 이루려면 도시 건물 옥상에 흔히 보이는 손바닥만한 텃밭 따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헌데 건물에 칩거해 농성을 벌이는 소규모 씨족들이 이런 농장 운영을 할 여력은 없을 것입니다. 툭하면 돌배기들과 폭도들이 빼앗을테니.

결국 농지와 저장 식량을 지키기 위해 사설 무력집단을 형성할 인원을 모아야 하며 농사를 지을 인원도 필요합니다. 이쯤되면 작은 장원 규모가 됩니다. 이것이 아포칼립스에서 안정적인 식량을 얻기 위한 최저 요건이죠. 하지만 이에 대한 부분은 묘사는 커녕 설정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 훤히 보입니다.

토끼를 기르는 씨족? 그들이야말로 여유로운 농지와 그걸 충당할 노동력에 무장집단도 갖춘 강력한 집단이어야 말이 됩니다.

야생동물들이 늘어났다고 하니 사냥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한 설정입니다.

여자나 아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먹을 것이 문제죠. 많은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식인이 등장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 기간망이 회복은 커녕 무너진체 있다면 금은 소용이 없습니다. 문명에 대한 향수는 먹을 수 없으니까요.

결국 작품의 디테일은 문명의 멸망이 아닌 중국의 5호 16국 시절의 난세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라고 해도 좋겠죠. 그때도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고 하니.

사냥꾼들의 여자와 관련된 모험도, 그들이 가지는 위상도 그런 난세에서나 보여질 법한 모습들이고요.

돌배기들의 행태도 사람을 감염시키는 능력은 없고 그저 집단 형성과 폭력, 약탈을 주로 하니 폭도들, 즉 난세의 마적때들과 별로 다를 것도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마적들이 더 무섭네요. 전술을 구사해 지능적으로 약탈을 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식인도 하니….

문명이 무너지고 인류의 멸종을 걱정하는 상황 치곤 사람 자체가 귀하다는 인상을 거의 느낄 수가 없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것은 이미 몇 분이 쓰셨더군요. 전 다른 게 아니라 주인공 스스로가 어떻게 이미 여자와 가정을 이룬 적도 없으면서 자신이 씨를 뿌릴 수 있는 진짜 남자인지를 확신하는지가 궁금합니다.

현대의 의학시설이 없으면 그냥은 알 수 없는 것을 기형이 보이지 않는단 이유만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죠. 작중에는 이미 정상적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과 남성 두 명이 진짜가 아님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심각한 맹점이자 설정오류입니다.

작품의 문체는 스피디 하고 흡입력도 있습니다. 헌데 그것이 표현하는 이야기는 구멍이 너무 많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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