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브릿지의 단편 시스템이 소문을 잘 탄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무림계 거두의 나들이였다.
악인이 악행을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피카레스크에 속하고, 그러나 범죄와 타락의 디테일은 치워두고 정의 없는 단죄와 응보를 이야기 하니 갱스터가 아닌 필름 느와르 장르에 가까울 것이다.
본래 무협이란 것이 이렇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 시절에 쏟아진 무협영화와 느와르 영화들이 노래하던 멋들어진 폭력의 서사가 비정한 눈먼 세상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그 허무함이란!
그것이야말로 그 장르들의 골수가 아닐 수 없다!
여기 살은 물론 뼈까지 발라내 골수만을 요리로 내어놓은 단편이 있다.
어디서 구르던 개, 아니 개뼈다귀 같은 운명이 개뼈다귀 같은 전투를 치르는 짧막한 이야기다.
너무 오래 가열되어 피딱지처럼 굳어버린 분노는 여기서 ‘자모원앙월’이라는 매니악한 무기로 형상화된다.
세상에게 버려지고 소외되었기에 자신도 똑같이 세상의 선악관념을 소외시킨 자에게 남은 무기란, 풍진 세파에 무참히 마모되어 날조각만 간신히 남은 이빨뿐일 것이다.
작은 이빨이지만 한 번 드러내면 살을 내어줄지언정 반드시 뼈를 취하는 이대도강의 필살 무기이기도 하다.
선택권조차 없이 악으로 전락한 이들의 분노는 자신들처럼 폭력을 다루면서 오만하게 정의를 외치는 자들에게 나지막히 으르렁댄다.
너희에게 정의正義가 있다면 개들에게는 정의情誼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