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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범우주적 소수자 연대 출범 (작가: 뚜근남, 작품정보)
리뷰어: 글포도, 18년 10월, 조회 103

* 매우 주관적이고 전체적으로 내용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품 먼저 읽고 리뷰를 읽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주 항행을 하는 시대, 낡아빠진 우주선이 아니라 게이트로 간단하게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 한 사람이 ‘범우주적 소수자 연대’를 위해서 길을 떠난다. 이름도 그럴듯하고 뭔가 대단하고 멋지고 근사한 출발이다. 행성 간 게이트 이동이라니! 이런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먼 미래에도 여전히 극렬한 대립은 존재하며 성소수자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모양인지 생물학적으론 여성이지만 트랜스남성인 경호는 ‘단조롭고 정숙한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야유를 받으며 떠나간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불편한 욕설에다 기원 전후에서 멈춰버린 일부 사람들의 세계관을 격렬하게 꼬집고 시작한다. (이런 걸 꼬집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독자는 경호의 거침없음이 사실 놀라웠다.)

‘옳은 걸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은 걸 틀리다고 생각한다’가 경호의 믿음이다.

소수자는 둘째치고 일단 범우주적인 동맹은 가능한가? 게이트로 초광속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라면 어쩌면 가능할런지도. 근데 그렇게 해서 뭘 하자는 걸까? ‘성간 접촉은 이루어졌지만 교류는 활발하지 않고 인류와 외계인들간 서로 아직 잘 모르는 상황’에서 소수자들부터 뭉치자고 한다는 게 가능한 걸까? 난 조금 회의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당신의 종족이 부정하는 당신들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떠나는 경호의 여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주적으로 확장된 소수자는 어떨 것인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사실 ‘태호’(커다란 호수)라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거대하고 어려워 보이는 임무에 조금 압도돼서 왠지 어려운 소설인가 생각하며 계속 읽을지 말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새로운 행성, 또 작가가 보여줄 외계인에 대한 묘사가 궁금하여 (새로운 것은 늘 설레게 만들고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계속 읽어나가게 됐다. 그리고 만났다. 아주 특이한 종족들을. 사실 이 종족이 좀 생소하고 특이해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70% 이상이 물인 습지에 가까운 행성 ‘태호’에는 그들이 산다. 억년에 가까운 테라포밍을 해서 자신들에게 알맞은 환경을 개척할 줄 알고 인류가 아는 종족 중에 가장 착한 종족인데 자연을 해치는 게 싫어서 느릿느릿 자연과 조화되는 과학기술을 발달시켜 왔으며 다툼과 전쟁 없이 호수를 넓히는 데 긴 시간을 들였던 종족이라고 한다. 그 생김새를 묘사한 부분을 보자.

‘지구에 있는 것과 굳이 비교하자면 마스코트 인형탈이나 커다란 구미베어, 아니면 유명한 타이어사의 마스코트처럼 통통하고 부드럽게 생긴’ 이 종족은 유리구슬 같은 눈을 빛내며 2미터 가량 큰 보랏빛 개체로 물을 헤엄쳐 다닌다. (색상이나 크기는 모두 다른 걸로 묘사된다.)

그들은 지구인을 ‘덜말랑인’이라고 지칭하며 인사할 때 ‘우리 서로 사랑해주자’며 격렬하게 껴안으려 하는 특징이 있다. 엄청나게 부드럽고 포근할 것 같지만 힘이 세서 잘못 안기면 압사당할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경호의 방문 목적을 듣고 ‘무엇의 소수자일까?’ 묻는 장면에서 그래 소수자의 기준은 뭘까 함께 생각하게 된다. 경호와 ‘말랑인’들은 대화를 통해 소수자를 찾으려고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문득 든 생각은 소수자를 찾으려는 경호로 인해 서로 사랑해주자며 껴안고 사는 평화로운 종족에게 편견을 심어주고 있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독특하고 착하고 이상적인 종족처럼 느껴졌다.

번식기가 아니라서 야한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수줍어하고 어떤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이해가 어려우면 ‘호에엑!’하면서 체액을 방출하고 쓰러져 버리고 수면 위로 떠올라버리는 기이함을 보여준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런 정도가 계속 되는데 사실 이 설정이 퍽 재밌었다. 꽤나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 중간 중간 적절히 삽입돼서 재미를 더하는 동시에 한 박자 쉴 틈을 주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도 호에엑 하면서 쓰러지는 외계인들이 상상돼서 슬몃 웃음 짓게 되기도 했다.

‘극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는 게 이 종족의 최대 약점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극도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별것 아닌 말들이다. 단순히 나라를 묻는 질문, ‘아이를 가진다’는 말을 들을 때, 후손을 남긴다는 것에 대해 말 할 때, 성별의 개념이 아예 없는 종족에겐 경호의 모든 말이 충격 그 자체라서 호에엑, 거리며 계속 픽픽 쓰러져간다.

그러나 문화적 충격이란 어느 한쪽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테니 자 이제 지구인 경호가 충격을 먹을 차례가 온다.

‘말랑족’은 ‘아빠’와 ‘엄마’가 전부다. 게다가 그걸 선택할 수 있는데 그건 힘의 차이라고 한다. 힘이 세면 아빠가 될 수 있다. 아빠도 될 수 있고 엄마도 될 수 있지만 아빠를 선호한다. 그들 종족 사이에서도 엄마 되기는 기피하는 것이고 …. 이쯤 되면 이들에게 가졌던 호감이 슬며시 바뀌어간다. 왜 이런 이상적인 종족에도 성차별은 존재하는 걸까?

지구인들은 엄마와 아빠가 정해진 채 태어난다는 경호의 말에 또 한명이 호에엑 쓰러지고…..결국 충격적인 대화를 가벼이 내뱉는다며 모든 말랑인들이 경호를 피하는 사태까지 간다. 나중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호에엑!

지구인과 이 외계 종족 사이의 대화 장면을 읽고 있자니 예전 TV에서 오지 탐험을 떠난 연예인들이 멀리 원시부족들을 찾아가서 이질적인 그들의 문화 행태를 보며 충격 받던 그런 장면들이 떠오른다. 징그럽게 생긴 벌레를 맛있게 먹고 그것이 최대한 손님을 접대하는 좋은 음식이라며 먹어보라고 권하는 원시부족의 해맑은 눈동자를 악하다고 할 순 없다. 그건 다른 것일 뿐이다. 바꿔놓고 생각하면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원시부족 눈에는 굳이 옷을 입고 다니고 자연에서 나는 자연 음식이 아닌 가공식품을 쌓아놓고 먹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일 것이다. 지구인과 태호인 사이에는 그런 이질감이 존재할 뿐이다.

성소수자란 말 자체가 아예 필요 없는 종족이 존재하고 그들은 아빠 혹은 엄마 역할을 선택 할 수 있고 선택한 다음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두가 아빠만 하고 싶어한다는 것. ‘뛰어난 사람이 아빠고 모자란 사람이 엄마기 때문에’ (이건 그들이 만들어낸 편견일 테다.)

‘아빠를 할 수 있는데 엄마를 하는 건 삶을 손해 보는 거야.“ 라고 믿고 있는 종족. 합의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보통은 서로 양보하긴 싫어해서 결국 씨름을 해서 이긴 쪽이 아빠가 된다는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선택적 상황. 힘이 쎄야만 아빠를 할 수 있고 그건 동굴의 엄마와 알을 지키기 위해 정당화 된다.  왜냐면 아빠들은 자기 알만 빼고 모두의 알을 먹어치우려 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호에엑! 이 지점에선 읽던 독자가 쓰러져버렸다. 여태껏 착하고 호의적으로 봐왔던 외계인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 정신을 차리고 이 고도의 문명을 이룬 착한 종족이 동족을 먹어치우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식인종이었다는 이 기막힌 설정에 놀라지 않을 자 있을까?

그들 종족의 소수는 더구나 자기 알은 지키고 타인의 알을 많이 먹는 쪽이고 알을 잃는 쪽이 다수라고 한다. 소수가 강자인 세상. 동족을 먹지 않는 방법을 찾자는 경호의 말에 모두가 호에엑! 쓰러져버릴 만큼 굳을 대로 굳어져버린 편견의 소유자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그들은 반문하고. 3억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걸 바꾸자는 경호는 순식간에 혐오의 대상이 돼버린다. 호의의 대상에서 말 한마디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이런 상황을 우리는 꽤 자주 목격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지구인을 이해해주는 ‘말랑인’ 화우의 다음 말들은 대단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자신들과 다른 종족인 지구인의 상황을 전해 듣고 화우가 하는 말들은 그런 상황이면 응당 그래야 할 것 같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지 못함을 아는 경호나 우리는 불편해진다. 우리는 왜 화우가 말한대로 살지 않는가. 만약 경호가 구구절절 지구의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어떻게 됐을까. ‘호에엑’ 대량 사태 발생이 예상될 뿐이다. 결국 경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경호가 마지막으로 만나보고 싶었던 고집쟁이들- 자신이 찾는 소수자와 가장 비슷할 것 같다고 여긴- 그들은 화우의 설명에 따른다면 사실 범죄자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모든 규칙을 정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니까.

게다가 마지막 헤어짐의 순간에 화우는 갑자기 어떤 커밍아웃을 하려 한다. 자신은 이상하게도 네모가 되고 싶었다고. 그리고 자신과 연대하자는 화우. 이 소설 속에서 화우는 절대 약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야기 처음부터 경호의 안내자였으며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고 모두로부터 경호를 보호해주기까지 했으며 경호의 어떤 말에도 한번도 호에엑 쓰러지지 않았던 강한 존재였다. 그런 화우도 결국 범우주적인 연대를 하자는 발상 자체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거다라고 고백하며 연대할 수 없다는 경호의 말에 결국 호에엑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결국 화우는 진심을 말해준다.

“우리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그리고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양 말하는 꼴이 굉장히 같잖네!”

이후 계속되는 화우의 말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왜 우리를 타호인인라고 말하지 않는가. 네가 ‘말랑인’이라고 말해서 우리는 너를 ‘덜말랑인’으로 불렀다. 사실은 ‘덜지성인’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우리는 최고 지성인임을 알고 있고 그것을 자제하고 있었다고.

지금까지 착하기만 했던 화우, 모든 면에서 배려심 깊고 끝까지 지구에서 온 이방인 경호를 지켜주던 화우, 모두가 원하지 않는 이상한 네모가 되고 싶은 소수자 화우와의 연대가 결렬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다. 우리는 진정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기분 좋게 공존하는 게 가능한가? 편견을 안 갖는 게 가능할까? 내가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이 소설을 통해 모든 다름의 평화로운 공존이란 꽤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편견을 갖고 싶지 않아서 그 종족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채 떠난다고 경호가 말 할 때 좀 경솔하단 생각을 했는데 결국 알지 못하고 이해 못하는 것에 섣불리 접근하려다 또 다른 편견을 생성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던가. 우리는 언제나 타인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지 모른다. 저절로 이해되고 저절로 화합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지구인은 지구인대로 합리적일 때가 있으면서도 불합리적일 때가 있고 ‘태호인’들도 태호인들 대로 합리적일 때가 있으면서 불합리적일 때가 있다.

색, 크기, 형태가 다 다름에도 서로 안아주고 어울려 사는 ‘말랑인들’ 그들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이러면 이런 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장점을 이야기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역시 그들에게도 ‘엄마’ 역할은 기피 대상이며 억압의 대상이다. ‘고집쟁이들’은 소수자이지만 약하지 않다. 또한 태호인은 우주에서 최고 지성인임을 자부하지만 거부당하는 일을 참지 못하고 화를 폭발한다. 그건 경호도 마찬가지다. 화우가 ‘트랜스네모’라고 말할 때 기분이 나쁘다. 왜 기분이 나쁠까? 화우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아마 모두가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모순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착하고 교류가 활발하고 통역기가 완벽 작동 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고 서로 통할 것이라 생각한 경호가 순진했던 게 아닐까. 연대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텐데 말이다. 그래도 때론 순진한 이상주의자에 의해 세상은 조금 변하기도 한다. 경호의 여행을 통해 이 글을 읽은 독자의 마음이 조금 변화를 겪는 것처럼.

연대란 무엇이고 연대의 목적은 뭔가? 다수와 소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다수결의 원칙은 항상 옳은가? 소수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하는가? 때와 상황에 따라서는 ‘항상’이나 ‘언제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목격하게 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옳은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고 여태껏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인간은 늘 생각하는 존재이고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고 싸워왔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고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을 이루어왔다고 감히 말해본다. (이런 말도 무지함과 오만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덧붙이려 하지 않았지만 하고 말았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편견과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또 다른 편견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인지 모른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옳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생성되는 편견들이 이전보단 조금 더 세상에 이롭고 더 나은 편견이기를 바라볼 뿐이다.

경호가 찾으러 온 소수자들은 성수자만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약자, 소수자들 전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그런 걸 다 말하기엔 이 정도 분량으론 어려웠을 터였다. 그래서 번식과 그에 관련된 성별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경호가 이 한번의 실패에 절망해버려서 다음 여행을 안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긴 하지만 작가님이 특별히 다른 외계 종족이나 그곳의 다른 소수자들 얘기도 좀 더 해주시길 바라본다. 이왕 행성 간 이동이 편리한 게이트도 만들어둔 상황이라면 좀 더 많은 곳을 여행해야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다름’에 관해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다음번엔 무슨 말만 하면 호에엑!하며 쓰러지는 통에 제대로 된 말도 못하게 하는 종족 말고 다른 재미를 선사해 줄 그런 종족을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독자로서 이 소설의 최대 좋았던 점은 역시 ‘호에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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