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을 꾼다 공모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누구든 실종시켜 드립니다 (작가: 한켠, 작품정보)
리뷰어: 이나경, 18년 10월, 조회 317

Q. 소설 속 인물들과 비슷한 나이이거나 그 나이를 지나오신 분들의 꿈과 현실과 사랑에 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인물들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지요?

 

A.

최근엔 나의 글을 쓰기는커녕 남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입니다. 하물며 남의 글에 관한 글을 쓴다?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상상이란 시간을 연료로 삼으므로 시간이 부족하면 상상력은 메마르기 일쑤랍니다.

간밤에 저는 짬을 내서 소설을 읽기로 했고 우연히 이 소설을 골랐습니다. 우연히 리뷰 탭을 터치해 우연히 저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필연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느낌인가요?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그럽니다.

아무튼 저는 리뷰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소설 속 청춘들의 인생 선배로서 조언까진 아니라도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여러분은 “어휴 꼰대 냄새!”라며 질색하시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시면 그렇게까지 악취를 풍기는 글은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정 우려스러우시다면 한 손으로 코를 싸쥐고 읽어주십사…. (읽지 말라는 말은 안 함)

 

아래 글부터 읽으셔도 무방하오나 아무래도 본편을 미리 읽고 오시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먼저 저를 소개하자면, 간단히 말해 여태껏 남을 속이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갈 예정입니다. 가히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이로군요.

삭막한 현실을 더 삭막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만 아무리 이런 저라도 도저히 거짓으로 얼버무릴 수 없는 몇몇 주제가 있습니다. 낭만적인 것들— 예컨대 꿈과 사랑에 관해서만큼은 저도 거짓말쟁이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만 솔직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도 적당히 뺄 건 빼고 다듬을 건 다듬을지언정 대체로 진실일 것입니다.

대체로 진실이라니! 괘씸! 발칙!! 무엄!!!

아뇨, 여러분을 농락하려는 게 아닙니다. 말장난도 아니고요. 이건 말하자면 거짓말쟁이들의 습관 같은 거예요. 본심을 전하(겠다고 선언하)기 두려운 나머지 얄팍한 술수를 부리는 겁니다. 연막을 피우는 거죠. 자존심을 세우려는 발악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지는 자존심이란 얼마나 알량한가요.

참고로 사기꾼들이 “무조건” “반드시” “절대로” 운운하는 것들은 걸러 들으시는 게 좋습니다. “대체로” “얼마간” “적당히”를 믿으셔야 해요. 대체로 그렇습니다. 아니, 절대로.

 

 

각설하고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겨우 살림이 펴나 싶으니 IMF 외환위기라는 검은 해일이 우리를 덮쳤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희망을 잃은 채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지만 우리는 죄인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죄인이라도 꿈은 있습니다. 누구나 꿈은 꿉니다.

저의 꿈은 시시때때로 변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고 킬러가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택시기사, 고고학자, 우주비행사, 외교관, 사육사, 손해사정사, 테러리스트, 공무원, 목수, 첩보원, 타투 아티스트, 수의사, 문구점 주인, 요리사, 해적, 교사, 사채업자, 탐정…. 꿈의 직업이라는 주제로 주간지를 내도 될 정도였다고 할까요.

그러나 진정으로 저 중에서 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사실은 그냥 돈을 벌고 싶었던 거예요. 즉 저의 꿈은 가난을 탈피하는 것이었어요. 아니, 그것조차도 일차적인 목표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떵떵거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야 말로 저의 진정한 꿈이었다 하겠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부자가 되었겠지요. 당시 저와 교류하던 부류는 통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아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저 역시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신문도 돌려보고 우유도 배달했습니다. 인형 눈알을 붙이거나 봉투 접는 부업도 해봤고요. 학교에는 딱히 미련이 없어 일찌감치 그만둘 수도 있었으나 주변의 만류로 여차저차 졸업은 하게 됐습니다. 성인이 된 제게 남은 건 졸업장과 푼돈뿐이었어요.

어디에선가 누군가로부터 혹은 누군가의 어깨너머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면 연예인이 되거나 사기꾼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요.

그럼 제가 무엇을 했을까요?

당연히 연예계를 기웃거렸지요!

농담이 아닙니다. 행색이 초라하고 주눅이 들어 그렇지 사실 저는 꽤 멀끔하게 생긴 편이거든요. 지금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에 저를 괜찮게 보는 분이 많다고요. 그러니 어쩌면 연예계야 말로 활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조사를 해보니 특히 가수들 중에 부자가 많더군요. 따라서 저는 무작정 연예기획사를 찾아가 가수를 시켜달라고 졸랐습니다. 그곳의 관계자는 저를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우선 제 노래를 들어본 뒤에 판단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호감형 외모의 위력이랍니다.) 저는 내심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저는 애절하고 구슬픈 발라드를 한 곡 뽑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간단한 율동을 곁들여 댄스곡을 불렀고요.

노래를 듣는 내내 사장의 표정은 미동도 없더군요. 그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음성으로 저에게 “그 정도면 대성하지는 않더라도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제가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사장은 저를 불러 계약서를 쓰게 하더군요.

반년 뒤 저는 7인조 댄스그룹의 일원으로서 지금은 쓰지 않는 낯간지러운 예명으로 음반을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과거에 가수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것은 그러나 결코 자랑할 만한 과거가 아닙니다. 성과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실은 아주 나빴어요. 무대에는 몇 번 서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는 것 없이 바빴어요. 의미 없이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 사장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돈과 관련해 문제가 생겼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쳤고 우리도 결국 해산했지요.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연예계 활동에 크게 미련도 없었습니다.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최근에 두 멤버의 근황을 접했는데 하나는 유튜브에서 개인방송을 시작했고 하나는 지명수배범이 되었더군요. 풍문에 의하면 나머지 둘은 사망한 듯합니다.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하나는 동유럽의 한 소국에서 무슨 사건에 휘말려 피살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둘은 행방이 묘연하네요. 딱히 수소문한 적도 없지만.

요즘도 저는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게 되면 시침 뚝 떼고 제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따라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니까요. 슬픈 곡조가 아닌데도 후렴을 부를 즈음엔 괜스레 코끝이 시큰거려요.

 

 

음….

울적한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꿈이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일컫습니다. 즉 직업은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방편에 불과하지 꿈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향도 관심사도 다 달랐던 우리 일곱 명이 함께했던 건 목적을 달성하고자 선택한 수단이 같았고 그 시기가 같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 수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저마다 다른 수단을 찾아 떠난 것만 봐도 참 부질없는 인연이라 할 수 있겠지요.

직업이란 대개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도 방송가를 기웃거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수 생활을 그만두게 된 데 대해 별로 미련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유튜버가 되거나요. 팔자를 고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했을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여러분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한편 사랑은 더욱 까다롭습니다. 자신이 누굴 사랑하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안다고 해서 사랑을 당연히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서로 간에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조금이라도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이지요.

저도 힘든 시기에 만난 여자와 조촐하게나마 가정을 꾸려서 지금껏 단란하게 살고 있는데, 사실 사랑이란 마음의 상태 아니겠습니까? 이 마음의 상태를 둘 다 한결같이 유지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지요. 식물을 키우는 것처럼 세심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행히 저나 아내는 어찌어찌 결혼 생활을 탈 없이 유지하고는 있습니다만.

예전에 제가 알던 어떤 누님은 남편과 만난 지 보름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화끈한 성격이 아니어서 그렇게 과감한 일을 벌이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남편 될 사람이 딱히 불량하거나 하자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주변에서는 당연히 만류했지요. 헤어지라는 게 아니다, 다만 결혼만큼은 신중히 해라, 나중에 분명히 후회한다…. 그러나 누님은 듣지 않았습니다. 눈에 뭐라도 쓰인 것처럼 순식간에 부부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둘은 잘 지냈습니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고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둘째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 누님은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믿었어요. 걸핏하면 늦게 들어오는 게 말마따나 거래처 사람을 만나느라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저에게 토로하더군요.

저는 사람을 붙여 남편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과연 누님이 의심한 대로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더군요.

“그러길래 신중하시라고 그랬잖아요.”

“아무리 신중했어도 지금 남편 마음이 변할 줄 그때 알았겠니.”

하기야 오랜 동반자 관계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노부부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도록 연인처럼 지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소꿉친구였다고 하니 함께한 세월이 50년 가까이 되겠지요. 그런데 남편이 그만 여자 비서에게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너무 뻔한 스토리라 뒷이야기는 더 할 필요도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꿈도 사랑도 분명 낭만적인 구석이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가혹하기도 합니다. 아마 현실이 가혹하기 때문이겠지만요.

그런데 꿈은 어쨌든 자신의 몫입니다. 여러분의 꿈을 누가 대신 정해주지 않았잖아요? 목표를 정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걸 높여 잡거나 낮춰 잡는 것도 모두 자기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 상황에 떼돈을 벌고 싶다는 꿈이 버겁다면 먹고 살 정도만 지내고 싶다는 정도로 하향 조정하면 되겠지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보람된 일이오나 자신의 깜냥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은, 그러나 사랑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지라도 상대방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서 비극이 시작되지요.

한번 깨진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비관할 수밖에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충치는 뽑으면 그만이고 고름은 짜면 됩니다. 그렇게 자기 생활을 바로잡는 겁니다.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왜 탐정이 되기로 했는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밀실 살인사건의 트릭을 알아내려고? 다잉 메시지를 간파해 범인을 지목하려고? 괴도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단서를 풀어내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건 탐정의 몫이 아니에요. 애초에 그런 일을 하고 싶었으면 경찰이 되었겠지요!

여러분은 돈을 벌고 싶은 겁니다. 여러 직업 중에 탐정이라는 이색적인 것을 골랐을 뿐이에요. 물론 기왕이면 명탐정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요. 그조차도 수익 증대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복창하시죠.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게 우리의 목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 무엇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느냐?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느냐? 이게 아주 중요하고도 민감한 문제인데요…. 우리에게 오는 사건이란 십중팔구는 불륜입니다. 그건 이해하시죠? 애초에 살인이나 도난 같은 게 우리한테 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경찰의 수사력을 얕보시면 곤란합니다.

하여간 어느 가정이든 이 불미스러운 사태에 직면했을 때- 재벌이라든가 사회적 체면이 중요한 사람들 있죠? 그런 사람들은 탐정을 찾습니다. 입 무겁고 일 처리 깔끔한 탐정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는 바람 피우는 사람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리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지요. 그것이 우리들 사립탐정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유능한 탐정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대강 인터넷 검색해서 찾을까요? 아니면 남들한테 ‘야 나 이번에 와이프 바람 난 증거, 누구 탐정한테 받아냈다, 너도 연락해 봐라’ 이런 식으로 추천을 받을까요?

아니죠. 이게 다 우리 협회에서 적절한 탐정을 매칭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이게 바로 협회의 존재 이유예요. 우리 협회에 등록만 하시면 만사형통인 거죠.

그러니 부디 망설이지 마시고 등록하시라는 말씀입니다. 무얼 위해서? 여러분의 꿈을 위해서!

자! 그러려면 일단 입회비와 교육비를 납부하셔야 하는데, 입회비는 협회 운영비라 어쩔 수가 없어요. 이건 내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교육비는 정식으로 등록하시면 추후에 절반을 돌려드려요. 이게 가끔 교육만 받고 협회 이름 팔아서 개인 활동 하려고 하는 사기꾼 같은 놈들이 있어서 그거 방지하려는 보증금 같은 겁니다.

여러분, 자기 계발을 아까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길게 보는 안목으로 미래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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