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발견하고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삶 (LIFE)의 목적이다."
이는 잡지 라이프(Life)의 모토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실제 라이프의 창간사이자 모토인 ‘라이프를 통해 세상을 보라’를 영화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라이프는 20세기를 대변하는 잡지였다. 전성기 시절 1,300만부가 넘는 발행부수와 900만장에 이르는 사진 아카이브, 500여명에 이르는 당대 최고의 사진 작가진 등 라이프지는 필름 시대의 아이콘이었으며 ‘포토 저널리즘’을 개척한 사진잡지였다. 자타공인 최고의 저널이었던 라이프는 TV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쇠락하기 시작했다. 73년에 라이프지는 주간지 시대를 마감하였고, 월간지와 특별호 체제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2007년 3월 종이 잡지로서 마지막 호를 발간하고 온라인 잡지로 전환되었다.
영화 속에서 42세의 ‘소심남’ 월터는 잡지사 라이프에 다니는 평범한 미혼의 직장인이다. 입사 후 16년 동안 그가 맡은 업무는 필름을 현상하는 것이었다. 잡지사 라이프에서 현상부서는 핵심부서였지만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필름 사진은 퇴색되어 갔고, 수작업으로만 가능했던 인화기술 또한 디지털 보정기술로 대체되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라이프는 종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잡지로 거듭나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고, 경영진은 마지막으로 발간될 종이 잡지의 표지를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사진으로 결정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위대한 잡지 라이프에 바치는 헌사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마지막 표지사진에 담겨진 의미는 진솔한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같은 시공간에 머물며 함께 노력해왔지만 화려한 축제 뒤편에 가려진 숨은 공로자들, 그들의 헌신에 표하는 경의와 존경이었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실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불리지만, 실존 동물 중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물로 꼽히는 눈표범과 닮아 있다. 2013년 말에 개봉된 이 영화의 전 촬영과정은 디지털이 아닌 필름 카메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한 실제 현장을 방문해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세트 촬영이나 컴퓨터그래픽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이슬란드와 히말라야의 대자연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기술의 발전은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디지털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히어로에 열광하고 대중들은 다시 LP판을 찾는다. 폴라로이드와 필름 카메라의 느림의 미학이 다시 주목받고, 여전히 종이에 매끈하게 인쇄된 잡지들을 읽는다. 최신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가슴 속에는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구할 수 있는 따스함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스티스에 등장하는 흑인여성의 말처럼 “구형에 존재하는 구형 나름의 맛”은 바로 그러한 영역에 속하는 것일 것이다.
파스티스는 가짜가 진짜가 되길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짜를 동경하는 가짜의 이야기이다. 파스티스를 읽으며 생각했다. 진짜와 가짜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촬영한 사진과 그들이 학습한 감정은 진짜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것들’에 포함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느끼고 욕망한다는 것, 순수하게 사랑하고 행복을 꿈꾸는 것, 그 감정만큼은 오류가 아닌 진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파스티스(Pastis)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식전주라고 한다. 향미료인 아니스 열매(aniseed)의 강한 향이 특징인 파스팃티스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일반적으로 물에 희석하여 마시는 특징이 있다. 높은 순도의 알코올로 인해 물에 희석되어야만하는 운명을 가진 파스티스는 어쩌면 진짜를 찾기 힘들어지는 세상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