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을 면전에서 리뷰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저 제가 하는 말들이 너무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 작품도 작가님이 호러 장르로 분류해 놓았으니 호러 소설을 읽는 관점에서 제 감상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MTF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MTF가 쓴 수기는 읽어본 적이 있지만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보는 것은 개인적으로 처음이었기에, 막 수술까지 마친 MTF가 처한 상황에 관한 묘사라던가, 심리에 관한 묘사 등을 기술한 초반부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작가님의 문체가 상당히 섬세하여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는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하고 있기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호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호러 장르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는 패턴 하나를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는 화자의 불안한 정신상태에 대해 밑밥을 깝니다. 그러고 나서 화자에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주는 온갖 난폭한 상황들을 제시합니다. 그럼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화자는 작품의 말미에 환각을 보거나 이상한 말을 하면서 무언가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모든 클리셰가 다 그렇지만 이 패턴도 잘 쓰면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는 좋은 소재와 문체에도 불구하고 해당 패턴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여 결국 호러로서의 힘이 약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 졸견으로는 동등한 무게를 가진 중심 소재가 너무 많았던 것과, 그런 소재들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던 것이 주요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주인공의 불안한 정신상태를 암시하는 부분에서 등장하는 소재만 해도, (1) 과거의 나, (2) 익숙하지 않은 브래지어, (3) 포비아 단체가 만든 동화, (4) 불안한 교우관계, (5) 혼잡해진 집안 사정, (6)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 (7) 남성이었던 과거의 흔적 등 큼직한 것만 일곱 개입니다. 거기에 중반부로 가면 화자에게 결정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서 (8) 성폭행까지 등장하지요.
하나같이 도입부에서는 그럴싸하게 보이고 다음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재는 절망적인 분위기를 잡거나 주인공이 결말에 미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능만을 수행하고는 빠르게 휘발됩니다. 결국 설명은 부족하고 허무한 인상만이 남습니다. 최소한 제일 처음 등장한 소재인 ‘과거의 나’에 대해서는 무언가 마무리해주는 대목이 있었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슷한 비중을 가진 소재가 많다는 것은 독자의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또 다른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어떤 소재를 따라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소설의 첫머리부터 등장한 ‘과거의 나’는 중간에 사라졌다가 결말부에 갑자기 나타납니다. 작중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가 보면, 처음에는 트랜스젠더가 입은 성적 피해가 제대로 이성 간의 성적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가 갑자기 과거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와 섞이며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이유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을 대고 있는 곳이 많으니 반전도 다른 것들과 똑같이 가볍게 흘러가는 소재 정도로만 느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반전이라면 해당 작품의 중심소재에 관해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야기해주는 부분일 터인데, 명확한 줄기가 없으니 반전이 반전처럼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내일 군대 간다는 그 남자와 화자가 단순히 ‘옛 친구’라는 것 외에는 명확히 제시된 정보가 하나도 없는 탓에 반전 자체의 충격도 미미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걱정거리가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버거운 걱정거리가 여럿 있었던 탓에 어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미치는 이유가 ‘좆같은 일이 너무 많아서 미쳤다’는 맥락이 되어 미친 행동을 하는 대목도 극적인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참고가 되는 작품으로, 러브크래프트는 ‘벽 속의 쥐’라는 중편에서 동일한 패턴을 사용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등장하는 중심소재가 ‘주인공이 매입한 영지에 숨겨진 비밀’로서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반전을 통해 중심소재의 진상이 드러나고 주인공이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해 미쳐버리는 뻔한 형식이었습니다만 하나의 소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 명확한 결말을 낸 것입니다. 그러니 독자는 온전히 중심이 되는 미스터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모든 소재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작용하면서 마지막 반전 부분도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반대로 셜리 잭슨의 ‘치아’라는 단편은 아예 중심소재가 없습니다. 그냥 치과 치료하려 왔다가 푸른 옷의 남자를 만난 여자가 미쳐버리는 내용인데, 구체적인 정황은 하나도 없고 심리묘사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엄청나게 재미있습니다. 작가님은 심리묘사에 큰 재능을 가지고 계시니 어쩌면 이런 형식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도 호러를 습작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패턴에 관해 안 좋은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리뷰 공모전이라는 형식에 호기심도 들었고, 남일 같지 않기도 해서 몇 자 남기고 갑니다.
그럼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