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요약 : 오만한 인간의 대죄는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에 섞여들지 못한 채 기름처럼 부유합니다.
불안한 우연
두 번째 리뷰 의뢰를 받았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셨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좋은 리뷰를 써드릴 수 있을지 겁이 나기도 합니다. 몇 가지 특이한 우연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1) [호문쿨루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가 배경이고, 저는 마침 [독소전쟁사]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약간이지만 독일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2) [호문쿨루스]는 신부가 낯선 남자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형식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카톨릭 성당을 다녔고, 영성체를 받았고, 고해성사를 할 때마다 죄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지금 저는 종교가 없지만, 그런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3) [호문쿨루스]에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과학자가 나옵니다. 저는 학부에서 바이오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을 약간 배우고, 실험을 도운 적도 있습니다. 생명/실험 윤리에 대한 책도 여럿 읽었습니다.
4) …
여러모로 불길한? 우연들이 겹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객관적으로 리뷰를 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리뷰를 쓰지 않겠다고 해도 이상하더군요. 제 감상을 믿고 정면으로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근거를 들고 논증해나가면서요.
낯선 자를 위한 고해성사
스펠링까지 적힌 실제 지명과 연도를 보면 실화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한 독일 신부에게 낯선 남자가 찾아옵니다. 다짜고짜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고 하죠. 신부는 이 남자가 저지른 ‘죄’에 대해 듣게 됩니다.
남자는 여기서부터 액자 안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인간 유전을 연구하고, 나치에 들어가 “아리아 민족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 완벽하고도 완전한 남성의 육체”를 만드는 연구를 하게 되고… 그 이후에 생긴 비극까지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남자에게 이입하기 어렵습니다. 3인칭 시점이지만, 시점 인물은 신부입니다. 신부의 눈으로 보고, 신부의 마음을 묘사하니까요.
신부에게 군터는 ‘낯선’ 손님입니다. 군터가 하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사실 생물학자라는 건 거짓말이 아닐까요? 군터가 미쳤다고 생각해도 자유입니다. 신부 역시 망상이 아닐까 의심하고요. 독자도 이게 판타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터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대고, 연구 과정을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여기서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 나오죠.
잠시 문장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0년 전 작품이라 그럴까요. 수식어가 붙으며 문장들이 길어집니다. 몇 번 다시 읽어야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더군요.
“가을 색상의 정장을 숨이 막힐 정도의 단정함으로 입은 그는”
-> 문장 전체도 아니고, 딱 주어만 가져왔는데 이렇게 깁니다. 수식어가 많거나, 명사화를 (단정함으로) 많이 쓴 글은 읽기 어렵습니다. 가독성이 떨어지죠. 연구에 따르면 독자들은 단문을 더 좋아합니다.
“남자는 가을색 정장을 차려 입었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단정한 모습이었다.”
“길게 울음 울은 성당 문 경첩의 낡은 쇳소리가 그의 방문을 고지하여… 신부는 뒤를 돌아보았다.”
-> 이런 문장 구조는 유럽어에서는 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사물-쇳소리-을 주어로 놓지 않습니다. ‘방문을 고지했다’는 말도 한국어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과 관계가 있는 문장을 붙여놓으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성당 문 경첩에서 길게 우는듯한 낡은 쇳소리가 났다. 신부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린 석양에 곧 져 버릴 해를
예비하여 제단에 초를 켜던
아직 젊은 얼굴의
보좌 신부가”
->수식어가 3중으로 되어 있고, 중의적이기도 합니다. 단문으로 끊고, 부사절로 바꾸면 좋습니다.
“석양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렸다. 곧 해가 질듯하여 젊은 보좌신부는 제단에 양초를 켜던 중이었다.”
문장을 참신하거나 독특하게 쓰는 건 좋습니다. 비유나 감정이 실린 묘사도 좋습니다. 독자도 묘사를 음미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문법을 꼬아놓으면 읽기가 어려워질 뿐입니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10년이 지났으니 많이 성장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부족하신 부분도 고쳐나가시면 되고요. 수식어를 단문으로 바꿔보는 연습을 해보셔도 좋고, 문장 교열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이제 문장 이야기는 끝내고, 소설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이름과 주석만 남은 2차 세계대전
이 이야기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작가님은 많은 지명과 인명,주석을 뿌려 두셨지요. 실화같은 느낌이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군터가 진짜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군터는 나치에 무관심합니다. 나치 사상보다는 호문쿨루스를 만드는데 집착합니다. 연구소는 전쟁과 격리 되어 있습니다. 나치나 전쟁은 흐릿해지고, 미친 과학 연구자가 전면에 나옵니다.
그런데 군터는 추상적인 독백을 늘어놓습니다. 보여주지 않고 말해주기만 해서일까요. 연구소 이야기는 가짜처럼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는 묘사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살덩어리’나 몇몇 대화, 마지막에 일어나는 사건들만이 그나마 구체적인 장면입니다. 나머지는 종교적인 죄책감에 휩싸인 장광설입니다.
현실과 환상이 잘 섞이면 좋겠죠. 하지만 둘은 모순을 일으킵니다. 여기에 가독성이 나쁜 문장이 더해지면 독자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 입장에서 말해보면, 군터는 과학적이기보다는 종교적입니다. 수도사 맨델조차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콩을 길렀을 뿐이니까요. 전시 과학자들은 파인만처럼 유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자들은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끔찍한 비극 앞에 윤리는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특히 “드디어 인간의 신비를 정복한다”던가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고양된 오만함”이라는 대사가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에게 유전학은 교과서 속 개념과 논리일 뿐입니다. 실험실 인턴만 해봐도 과학의 실상은 지루하고 초라합니다. 특정 이끼의 싹을 판에 올려놓고 광선을 쬐면서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재본다던가… 그런 식입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말은 뉴스의 선정적인 문구일 뿐이죠.
‘오만’해지기는 커녕 인간은 무지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몇 십년이 지났지만 암 치료법은 독한 약과 방사선, 절제 수술 뿐입니다. 여러 난치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도 잘 모릅니다. 신의 영역이 아니라도 과학은 이미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벌어진 인체 실험들과,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동물 실험처럼요. 실험용 쥐를 수 없이 죽였다던 선배님이 하신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현실보다는 추상적인 욕망에 몰두합니다. 고증 오류는 하나하나 지적하진 않겠습니다. 종교vs과학이나, 비이성적인 소유욕, 질투, 광기는 현실보다는 환상입니다. 가짜라는 티가 나니까요.
이 심리를 납득 가능하게 설명한다면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이유같습니다. 신의 경지에는 도달하지도 못한 인간의 오만입니다. 7가지 대죄 중 하나인 그 오만말입니다.
고증보다는 독자를 생각해보시길
저는 고증을 열심히 하시라고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장르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합니다. 공포물이었다면 독자는 “소설인데 누가 과학을 따져?”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태그는 역사/판타지였는데 후기를 보면 고민을 꽤 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태그만큼이나 중요한 게 작품 자체입니다. 고유명사와 주석들은 “이건 역사물이에요, SF에요. 고증을 신경 써서 읽어주세요.”라는 신호와 같습니다. 역사물이나, (하드) SF는 독자가 고증에 더 민감합니다. 이런 소설은 고증과 취재에만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정도로 고증을 하지 않으면 독자가 믿어주지 않으니까요.
습작가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러니 “독자가 어떤 부분을 기대할까?”를 고민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고증이나 도덕적인 주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인지? 고증 따위 상관 없고 흥미진진한 전개만 나오면 되는지? 독자를 알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겁니다.
결론 : 부유하는 대죄
프랑켄슈타인부터 내려온 전통이 있습니다. “이성은 완벽한가?” “인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가?” 저는 [호문쿨루스]도 이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봅니다. 실화처럼 보이려 하죠. 하지만 이 괴기한 비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자들’과 섞이지 못합니다. 군터도, 마테르도, 필루스도 환상처럼 보입니다.
환상은 역사 위로 떠올라서 기름처럼 떠다닙니다.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말이죠.
작가님께 드리는 말
그런데 이 인형이 언제 물에 빠졌는지 보면 10년 전입니다. 10년 전에 저는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니는 꼬마였습니다. 물론 10년 전 기억들은 여전히 제 일부입니다. 여전히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죠. 제가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면 고해소 안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신부가 “내 믿음을 시험하고 계신다”고 말할 때의 무게도 느끼지 못했겠죠.
하지만 10년 동안 저는 변해버렸습니다. 이제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거든요. 저는 지금 바이오 물리학이라는 특이한 전공을 공부합니다. 매년 50권의 소설을 읽습니다. 지금은 브릿G에서 모르는 분의 작품을 읽고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작가님도 변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일을 겪으셨겠죠. 소설도 달라졌을 겁니다. 10년이나 늦은 제 피드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소통입니다. 누군가 읽고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리뷰를 쓸 때마다 매번 생각을 정리하고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제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고요.
- 과거를 돌아보는 지표입니다. 어떻게 성장했고, 얼마나 왔는지 가늠해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장점을 잃어버렸고, 어떤 단점은 아직도 남아 있나요?
- 새로운 과제입니다. 문제를 확인했으면 이제 목표를 세우실 차례입니다. 앞에서도 몇 가지 말씀드렸죠. 장점은 더 키우시고, 단점은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을 퇴고하셔서 더 읽기 좋은 문장과 내용으로 고쳐쓰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제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시간을 보니 6시간이 지났네요. 분량은 30매고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리뷰를 읽고 앞으로 더 좋은 소설을 써주시면 기쁘겠습니다.
리뷰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제 리뷰가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앞으로 리뷰를 쓸 때 참고하겠습니다. 브릿g의 쪽지 기능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시면 이메일(twinstae@naver.com)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평가에는 크게 다음 세 가지를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 [심리적 안전감] 리뷰를 읽으시면서 창피함,부끄러움, 수치심등을 느낀 부분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느 부분인가요?
- [맹점] 리뷰에서이런 걸 놓쳤다고 설명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 [도움이 된 부분] 리뷰의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되셨나요? 제가 어떤 내용을 써드리면 도움이 될까요? 피드백? 분석? 장점(칭찬)? 솔직한 감상?
2)번 만큼이나 1)3)번이 중요합니다. 평가를 받았는데 다들 의도만 설명하시더라고요. 이런 비유를 썼다던가, 어떤 의도로 기법을 썼다던가… 작품에 대한 설명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으로 리뷰를 쓰는데 더 도움이 되는 건 아무래도 1)3)번입니다.
맨입으로 써달라는 건 아닙니다. 리뷰 평가를 해주시면 앞으로 다른 작품도 읽고 몇 번 더 리뷰를 써드리겠습니다. 물론 의뢰비는 안 받고요. 저도 바빠서 모든 작품을 읽지는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정책을 밀고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