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면 그건 어떤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소멸하지 않고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천당도 지옥도 아닌 여기 이곳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죽은 자로서 떠도는 느낌은? <사랑과 영혼> <프라이트너> <비틀쥬스> 같은 영화들을 좋아하는 나는 영혼과 인간이 공존하며 벌여나가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내 취향에 맞는 이야기였다. 유령의 입장에서 유령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이 이야기 속에는 육체를 잃어버린 유령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욕쟁이 할머니, 개구쟁이 같은 친구 명현, 원한에 사무쳐 보기만 하면 목 조르는 무서운 여자, 그들은 각각 개성이 있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주인공(원하)의 행동이 참 귀여웠다. 이야기 서두에 젊은 커플에게 보이는 심술조차도 귀엽게 느껴졌었던 건 그 정도 질투는 죽은 자, 육체가 없는 자가 산 사람에게 충분히 가질법한 것이어서일 거다. (물론 그 커플이 뭔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근데 주인공이 전혀 밉지가 않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령들 중에선 가장 순하고 착한 존재. 그래서 아마도 어느 골목길에서 마주친 노숙 강아지에게 마음을 쓰고 그 강아지를 위해서 이것저것 노력하는 그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을 보는 건 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만들지 않던가.
이 이야기는 하하 호호 깔깔 박장대소하게 만들진 않지만 읽다 보면 피식피식 웃게 만들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 만들며 다 읽고 나면 어느새 마음이 따스함으로 촉촉이 젖어들게 하는 그런 잔잔한 이야기다.
조금 아쉬웠던 건 유령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조금 더 이야기에 담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귀신들이 원한이 있어 승천하지 못하고 남아 있다는 설정 같은데 그 부분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쉬웠고 또 원하가 인간 세상에 남아 있었던 이유가 끝에 밝혀지긴 하는데 그것(결말 부분 스포일러라 이렇게 표현) 이 너무 갑자기 쉽게 풀려버려서 조금 맥빠지는 느낌이랄까? 그가 검은 눈물을 흘리는데 (원한이 풀리는 것) 그 과정이 독자를 납득시키기엔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부분은 선행의 대가로 승천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원래 원한도 없는 사람인데 다른 목적 때문에 남아 있었다고 읽히기도 해서 조금 어리둥절한 느낌도 있었다. 너무 착한 주인공이라서 원한도 그 정도 뿐이었고 용서도 너무 쉽게 하는 것일까?
또한 욕쟁이 할머니가 말한 살아 있는 것과 가까이 하면 왜 해가 되는지도 알 수 없어서 약간 궁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반부의 감정을 손상시키는 정도는 아니었고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운 주인공이어서 그럴 수도 있으려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주인공이 혼자 딸기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연극을 하는 장면에선 웃기면서도 귀여웠고 강아지와 헤어지는 장면에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잔잔하지만 진행되는 내내 독자의 감성을 쥐락펴락 할 줄 아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