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1챕터만 접수받는 공모전이 있었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우선 그 작품의 1챕터부터 잘 쓰자─이 비슷한 취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취지를 봤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확실히, 재밌는 작품은 처음부터 재밌다. 초반만 참고보면 나중에 재밌어지는 작품도 있지만, 그런 반론까지 포함해서 요컨대 이건 이런 식으로 비유를 해볼 수 있겠다.
수능에서 수학 성적이 만점인 사람과 20점인 사람이 있다. 둘 중 영어점수가 높은 쪽은 누구일까?
이런 문제가 있다고 치자. 분명 이건 정답을 맞추기 위한 확실한 단서가 있는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다. 수학을 잘한다고 영어 성적도 덩달아 오르진 않겠지만, 수학을 만점 받을 만큼 공부를 하는 학생이 과연 영어 공부를 안 했을까? 수학에서 20점을 맞은 사람이 과연 영어 공부는 열심히 했을까? 만약 전자와 후자 둘의 영어 점수를 놓고 돈을 걸어야 한다면, 나는 수학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의 영어 점수가 높다는 데에 걸 것이다.
요컨대 1챕터 공모전도 그런 느낌이었다. 1챕터가 재밌는 작품과 1챕터가 재미없는 작품 중 2챕터가 더 재밌는 작품은 어느 쪽인가? 또 3챕터가 더 재밌는 작품은 어느 쪽인가? 4챕터가 더 재밌는 작품은 어느 쪽인가? 1권은? 2권은? 1챕터부터 재미없다가 20권부터 재밌어지는 작품도 있겠지만, 1챕터부터 재밌는 작품을 놔두고 후자를 선택한다는 건, 1챕터부터 재밌기 위해 뼈를 깎는 고심을 거듭해 글을 썼을 작가에게 미안한 일이다.
독자는 1화는 읽어본다, 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브릿지의 기능 중 좋은 게 방문과 읽음을 나눈 건데, 1화의 방문 수와 읽음 수가 일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첫 독자가 방문1 읽음0로 카운트 되면 그 작품은 앞으로 단 한 번도 방문 수와 읽음 수가 일치하는 경우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조회수나 구매수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준다. 조회수가 높다고 좋은 작품이 아니다. 조회수는 클릭만 한 건지 읽은 건지 구분해주지 않으니까. 실제로, 이에 대해 느끼고 있는 독자들은 조회수 보다는 1화를 본 사람 중 몇 퍼센트가 하차하지 않고 다음화도 보는지, 즉 연독률을 본다. 1화 조회수가 10만인데 2화 조회수가 1000인 작품과, 1화 조회수가 100인데 마지막화까지 조회수가 100인 작품 중 어느 작품이 더 재밌을 것 같은가 하면, 내 생각에는 후자다. 저 연독률은 1화만 봐도 이 작품은 끝까지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라는 의미로 읽힌다. 일례로 이와 비슷하게, 호킹 지수를 홍보에 써먹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 책을 산 독자 중 99.9%의 독자가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라는 식으로. 100만 명이 책을 샀다면 그 중 99만 9천 명이 끝까지 읽을 정도의 책이라는 소리다. 내 앞에 맨부커상 받은 책과 호킹 지수 99.9%인 책이 동시에 놓여 있으면 99.9%책을 선택할 확률이 70%이상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연독률은 단편이나 프롤로그만 올라와있는 작품에는 먹히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문과 읽음을 나눈 건 좋다고 생각한다. 독자 입장에선 볼 수 없지만, 독자가 그걸 볼 수 없다고 해도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보고 나서 자기 글에 문제가 있단 걸 파악하고 작품에 대해 한 번이라도 되돌아보고 고친다면, 독자가 좋은 글을 읽게 될 확률도 올라간다.
다시 주제를 환기하자면, 독자는 1화조차도 다 읽지 않는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좀 놀랐지만, 사실 그건 내가 여태 어리석었던 탓이다. 나조차도 한두 문단만 읽고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도 그냥 넘길 뻔한 ‘하차 포인트’가 꽤 있었다.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지겹다고 느낀 게 아니라, 계속 다음 내용을 읽고 싶게 만드는 뭔가를 보여주고 있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내가 정말로 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읽고 있나? 이 글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읽어야 할 글인가?’라고 거창한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에 스폰지밥을 참 열정적으로 봤었다. 스폰지밥 뿐 아니다. 보거스나 톰과제리 등의 서구권 애니메이션들은 물론, 드래곤볼이나 명탐정코난 같은 재패니메이션도 좋아했다. 그래서 tv를 보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면서도 tv를 봤다. 기사 피핀의 천 한 가지 모험이었나, 아니면 딜버트였나, 그 작품은 아침 6시인가 7시인가 방송을 했는데, 일부러 알람까지 맞춰놓고 일찍 일어나서 보곤 했다. 물론 일어났다가 다시 자버려서 못 본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은 몹시 분해서, 다음에는 꼭 다시 잠들지 말고 일어나서 봐야지 하고 다짐을 새롭게 했다. 작품이 재미없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관성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들 밥을 먹을 때는 그냥 tv에서 신경을 껐을 것이다.
우선 밝혀두자면, 그렇다고 이 작품이 내가 그동안 봐왔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1화만 올라와 있기 때문에 리뷰를 할 때의 밀도가 더 깊어졌달까, 비유하자면, 집중포화가 된 셈이다(만약 이게 연재가 꽤 된 작품이었다면 이렇게 리뷰가 길어지진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장편과 단편의 밀도가 다른 건 알지만, 59매면 단편 하나 분량이다. ‘한 화를 봤다는 건 한 작품을 봤다는 것과 같다’고 하면 과언일까? 게다가 1화만 올렸으니 1화만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이 1화부터 재밌는 게 아니라 2화나 3화까지는 봐야 재밌다면 처음 올릴 때부터 1화만 올릴 게 아니라 3화까지 올렸어야 할 터였다.
다시 이야기를 환기하자면, 이 작품은, 앞서 말했듯 나쁜 작품은 아니다. 작품의 말에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만약 초반 20분에 이 내용이 나왔다고 내가 영화관을 뛰쳐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영화에 심취해서가 아니라, 그냥 환경이 영화관이라서 그렇다. 웹소설은 그렇지 않다. 당장 이거 읽다가 게임을 켤 수도 있다. 나는 독서가 모든 오락거리 중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인터넷으로 글을 읽다보면 눈이 쉽게 돌아간다. 게임을 켜진 않더라도 유튜브로 들어가서 음악이라도 틀거나, 검색어 순위를 보거나 하는 식이다.
분명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1화의 구성도 괜찮다. 초반부는 딱히 좋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지만 어쨌든 이후 착실히 위기도 생기고, 위기가 끝난 후에는 꽤 재밌어보이는 전개가 이어질 것 같은 여지도 남긴다.
다만 좀 아쉽다. 이 작품엔 아침에 일어나서 다음 화가 올라오진 않았나 확인하거나, 읽고 나서는 이 작가는 천재야! 라고 속으로 소리치거나…나에겐 그 정도로 재밌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쩌면 1화부터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초 만에 다 읽는 시 한 편이 10권짜리 장편소설보다 좋은 경우가 수두룩 한데, 걸작을 바라는 건 아니더라도 분량이 59매나 되는 1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