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 역시 작가프로젝트 기존 출판 지원 선정작이라고 해서 읽었다. 확실히 선정작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 믿고 봐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백설공주> 이야기로 시작한다. 눈처럼 하얀 아이와 그 아름다움을 질투할 수밖에 없는 왕비의 이야기. 너무 많이 읽히고 너무 많이 각색당해서 결코 새로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그 이야기가 여기서 또 어떻게 색다르게 탈바꿈할 것인가 흥미가 먼저 생겼다. 아이들의 연극 연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아기자기하고 좋았다.
6학년 4반의 연극 연습. 백설공주를 맡은 아이를 질투하는 왕비 역할을 맡게 된 아이의 미묘한 감정이 익숙한 동화의 줄거리와 중첩되면서 빠르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이 이야기는 왕비 역할을 맡은 아이의 이야기라서 그 어린아이다운 질투와 혼란을 낱낱이 볼 수 있다. 원래 드라마라면 질투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는 게 재밌지만 소설에서는 그 반대다. 내면 묘사가 가능한 만큼 질투하는 쪽에서 전개돼야 더 재밌고 진상을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차피 왕비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다. 자 그러면 이 여자아이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든 맘편히 보고 그 아이가 치를 대가를 구경하자, 이런 편한 마음이 가능해진다. 원래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 쪽에 서서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원래 마음이 불편한 법인데 내 경우엔 백설공주 이야기가 그런 심리적 불안을 제거해주는 심리적 안전장치 같은 역할을 했다.
원래 가졌던 것을 잃어버린 아이(소희)의 질투, 맞다. 왕비도 원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자였다. 매일매일 거울을 보며 “거울아, 거울아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하고 물어볼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예기치 않게 거울의 입에서 백설공주 이름이 나왔을 때 왕비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라. 소희에게 유리의 존재가 그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전까진 아이들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가졌던 아이였으니 당연히 자신이 백설공주 역을 맡을 거라고 믿었는데 전학 온 아이 때문에 이제 2인자로 모두의 관심에서 살짝 밀려날 때 느끼는 충격은 상당할 거다. 한때의 탑스타들이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걸 못 견디고 늙은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드러내기 싫어 빠르게 은퇴해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이리라.
‘소희도 예뻐. 하지만 유리가 더 예뻐.’
못생긴 아이들이라면 예쁘면 된 거지 뭘,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미 가장 예쁘다는 타이틀을 가져봤었던 그런 아이에겐 더 예쁜 아이가 존재한다는 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소희는 그래서 상처 입은 아이고 그래서 더 해선 안 될 행동들을 하게 된다. 유리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유리가 뭘 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겉으로 내색 않으면서 속으론 계속 미워하고 질투하고 결국 저주하게 되는 흐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이해가 된다.
이 이야기는 철저히 소희가 잘못된 마음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이야기이다. 검은책은 그 매개 수단일 뿐이다.
우연히 얻게 된 검은책에는 4번에 걸쳐 상대를 저주하게끔 돼 있고 꽤 복잡해 보이는 규칙도 있다. 그럼에도 소희는 그 모두를 차근차근 실행해나간다. 마치 왕비가 백설공주를 제거하기 위해서 비밀스럽게 사냥꾼에게 살해를 지시하듯이. 소희가 남몰래 그런 검은 마음을 실행해가는 과정을 보는 게 독특하고 재밌었다. 왕비가 어떻게 됐더라?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백설공주> 이야기와 함께 달려온 만큼 결말도 그다지 좋지 않으리란 예상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방식과 그 반전이 꽤 신선했고 또 예상치 못한 깜짝 놀랄 반전도 있어서 좋았다.
소희는 어쨌든 아이다. 6학년짜리 아이가 얼마나 완벽할 수 있었으랴. 이것저것 실수도 하고 소중한 마지막 기회마저도 놓쳐버리고 결국 …. 예상대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아, 어린아이에게 너무 한 거 아닌가? 살짝 그런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동안 저주를 계속하는 동안 심각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또 그럴만하다 싶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된다.
검은책을 읽게 하기 위해 백설공주 이야기는 이용당했을 뿐이다.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바로 검은책이고 검은책이 숨긴 저주와 그걸 행한 대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왕비를 연기하는 것과 왕비처럼 행하는 것이 다르듯이. 미워하고 질투하는 것과 실제로 저주하는 걸 ‘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교훈.
소희가 멋들어진 왕비 역할을 잘 해내서 아역 탤런트로 뽑혀갔으면 어땠을까? 사실 백설공주 연극에서 더 돋보이는 건 왕비인데 말이다. 한때 백설공주 연극을 해봤던 경험자로서 (난 마이크도 모자란 엉망진창 학교 연극에서 검은 매직으로 수염을 마구 그린 채 연기도 완전 못하는 허접한 사냥꾼역이었지) 소희에 대해선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