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시골로 귀촌해서 살던 한 노인이 물 문제로 갈등을 겪던 중 엽총을 들고 가서 공무원들을 죽였어요. 또 90세의 쪽방촌 거주 할머니는 성폭행을 당했다는군요. 남의 소설 리뷰하러 와서 웬 무시무시한 소리만 지껄이냐고요? 이 소설은 아무래도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보니까 노인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사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에 희생되는 노인들이 아니라도 노인들의 삶은 젊지 않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팍팍하겠죠. 전 아직 노인이 아니라서 그 정도가 얼마일지 상상도 못해요.
이 소설속의 주인공은 위에 예로 든 노인들에 비하면 정말 착하고, 정말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서두가 길었습니다.
목말라서 레몬주스를 사 먹고 싶지만 돈이 부족해서 가난을 투덜거리는 정도, 자기에게는 인색하고 뒤로 돈 빼돌리는 것 같은 아내를 탓하는 정도. 힘든 일도 안하는 모양이고 음 따스하고 나른한 오후에 공원에 갈 수도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노인이에요. 그렇지만 끊임없이 투덜거리는군요. 맑은 날씨도 싫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도 시끄럽고….. 그러다 잠깐 졸게 되죠.
그리고 그는 거기서 만난 어둠의 존재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게 됩니다.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갈리는 아슬아슬한 내기에 동참하게 된 거죠.
그것은 꿈이었을까요? 아니면 나른한 오후에 문득 찾아온 진짜 죽음이었을까요?
그게 뭐든 그것은 노인을 변화시킵니다. 그가 체감한 죽음의 공포는 삶을 긍정하게 만들어요. 갑자기 주머니에 지폐를 가득 채워놓게 만들진 않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걸 눈에 띄게 하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보이게 만들죠. 그가 새로이 발견한 행복은 원래 노인에게 모두 있었던 것이었죠. 그 잠시 잠깐의 꿈이 마술 같은 삶을 선사하는군요.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까지 깔끔하네요.
이 소설은 살짝 세계명작단편소설 같은 데서 뽑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소설이에요. 한국적이기보단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고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분위기가 제가 읽었던 한 세기 전 외국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거든요. 약간 동화 같기도 하고 (이걸 칭찬으로 안 받아들이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칭찬으로 하고 있는 얘기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짧은 글을 읽는 그 한순간에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컵에 담긴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다가 마술가루 한 스푼 첨가했을 뿐인데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마술가루가 어떤 건지를 알고 싶다면 소설을 읽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