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지고 있는 불치병을 치료해 주겠다, 아니, 아예 통 크게 영생을 주겠다. 주는 김에 세상을 지배할만한 부와 권력도 함께 주겠다. 이런 어마어마한 제안을 받았을 때 소설 등장인물들이 택하는 선택은 크게 두가지다. 흥청망청 마음껏 탐욕을 부리다가 그 탐욕 때문에 결국 스스로 파멸하게 되는 조연 타입. 두번째는 역시 마찬가지로 초반엔 흥청망청 하지만 아직 일을 되돌릴 수 있을 때 큰 깨닿음을 얻고 사랑의 힘이나 정의의 이름 같은 것으로 유혹을 물리쳐 행복해지는 주인공 타입이다. 이 소설은 조연 타입의 등장인물인 양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차원이동 장치를 통해 뇌종양을 잘라낸다는 설정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주 농담삼아 주고받았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견고한 갑옷을 입고 있던지 순간이동할때 절반을 걸치게 만들면 절반만 이동되니 무엇이던지 두동강, 그런 고로 마법사가 짱이다!’이라는 논쟁이었다. 물론 이 소재는 작품 가운데서 뇌마저 도둑맞게 되는 양석에 대한 주요 복선으로 작용한다.
양석의 뇌종양을 치료하는 과정은 미국의 소설가 존 스칼지의 소설 ‘노인의 전쟁’ 초반부를 연상케 한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존 페리’라는 존재가 실제로는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스포일러]1 알고있는 나로써는, 자신이 거울의 상처럼 묘사된 그 전의과정에 대한 묘사를 듣자 마자 ‘아, 이건 뭔가 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뭔가가 잘못되었을거라는 암시를 통해 그 찝찝한 기분을 잘 살린 묘사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손가락 하나만 까딱 하면 타인의 정보를 손쉽게 얻고 익명으로 너무도 가볍게 남의 행세를 할 수 있는 정보화 사회에 대한 비판도 조금 녹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작은 추측을 해 보면서, 이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다.